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중증장애인이 교육당국의 무성의와 장애인 편의시설 부족에 항의, 시험을 중도에 포기했다.뇌성마비 장애1급인 허광훈(37·사진 왼쪽·대구 달서구 월성동)씨는 5일 낮 12시30분께 대구 중구 경북사대부고에서 2교시 수리 시험 후 시설 미비에 항의한 뒤 고사장을 나왔다. 허씨는 "책상이 비장애인용이어서 엎드려 문제를 푸는 순간 허리 통증이 왔으며 장애인 화장실도 없어 불편이 컸다"며 "2년간 장애인 야간학교에서 입시를 준비했으나 시설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북사대부고에서는 10여년 전부터 대구지역 중증장애인이 모여 수능시험을 보아왔으며 이번에도 대필자가 필요한 32명이 응시했다. 그러나 화장실 입구가 좁아 휠체어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장애인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 학교 신축건물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돼 있지만 고사장과 별개 건물인데다 150m나 떨어져 무용지물이었다. 이날 고사장을 방문한 신상철 대구시교육감은 "지금까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관행대로 기존 시설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했지만 내년에는 시설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허씨의 결심을 꺾지 못했다.
시험 포기로 허씨는 장애인 스포츠 보치아를 전공하기 위해 용인대 특수체육과에 진학하려던 꿈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허씨는 1987년 세계보치아선수권대회 은메달획득,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 4위 입상 등 보치아에 남다른 실력과 열정을 갖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허씨는 "1년을 손해보더라도 장애인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지 않는 현재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허씨는 시험장의 장애인 차별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법적대응도 할 계획이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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