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태풍이 상하이에 상륙했다."지난달 28일부터 2일까지 열린 '2003 상하이 아트페어'(上海藝術博覽會·상해예술박람회)에 한국 화랑 10개가 대거 참가한 것을 아트페어 조직위원회는 '태풍'에 비유했다. 중국의 대표적 국제미술견본시장인 상하이 아트페어에 한국 화랑들이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인들 스스로 동·서 문화의 용광로라고 부르는 상하이에서 국제 아트페어가 열린 것은 1997년부터로 올해로
7회째다.
한국 화랑 관계자들이 상하이 아트페어를 '노다지 광맥', 혹은 '무한한 가능성의 시장'이라고 본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닌 듯했다. "세상에 아트페어에서 초대권을 암표로 파는 건 처음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몇몇 아트페어를 보다가 이렇게 관객이 많이 몰리는 미술시장을 보니 역시 상하이가 바닥이 넓긴 넓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아트페어가 열린 상하이무역센터 3, 4층은 기간 내내 중국 화랑 관계자, 전문 컬렉터, 학생 등 단체 관람객, 일반 관람객의 발길로 메워졌다. 정식으로 입장권을 사려면 25위안(약 4,000원)을 내야 하지만 어디선가 긁어 모은 초대권을 15∼20위안에 파는 암표꾼들이 전시장 밖 곳곳에서 호객하는 진풍경에 한국 화랑 관계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올해 참가 화랑은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각국과 프랑스, 스웨덴, 미국 및 주최국 중국의 화랑 260여 개. 중국·대만 화랑을 제외하고는 한국 화랑이 10개로 가장 많았다. 금산갤러리, 동산방화랑, 샘터화랑, 예맥화랑, 청화랑, 청작화랑, 표화랑, UM갤러리와 지방 화랑인 부산 조현화랑, 대구 우봉미술관, 그리고 미술잡지로 유일하게 월간 '미술시대'가 부스를 마련해 참가했다. 이들은 박서보, 곽훈씨 등 중진과 장혜용, 김일해, 정현숙씨 등 중견 작가들의 대표작을 비롯해 박성태, 이정웅, 김동철, 서정희, 장현재, 류하완, 이은숙씨 등 신진들의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여 중국 미술 애호가들의 눈길을 잡았다. 일본 화랑 3개도 한젬마씨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들고 나와 사실상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가장 큰 관심이 모아졌다.
아트페어 조직위는 "한국 화랑들이 주로 선보인 현대회화 작품은 비록 그 예술적 언어와 양식이 서구 미술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지만, 작가들의 핏속에 흐르는 직관적 동양 정서를 바탕으로 서구의 논리를 따뜻하게 껴안았다. 그들의 붓끝에서 따뜻한 인간미와 미적 열정이 함께 배어 나온다"고 소개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표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현장에서 사기보다는 앞으로의 거래를 문의하거나 작품 가격을 20∼50% 깎아달라고 조르는 현지 컬렉터들의 지갑을 처음 열게 한 작가는 장현재씨였다. 장씨의 서정적 추상화풍의 한국화 'Somehwere' 연작은 중국 관객들의 동양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듯했다. 류석우 미술시대 대표는 장씨 작품이 관심을 끈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현대미술은 아직 지체돼 있지만 급성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구상 단계에서 추상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관객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표하면서도 막상 실제 작품 구매는 비교적 값싼 자국 작가들의 풍경화나 산수화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앞으로 3∼5년이면 이런 사정은 변할 것이다. 한국 작가들은 중국 관객들이 못 본 것, 보고 싶어하는 것을 가져와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이정웅, 김동철 씨 등의 작품도 비슷한 이유에서 현지 화랑 관계자들의 교환 전시·일괄 판매 문의가 잇따랐다. 박성태씨의 철망조형 작품도 큰 관심을 끌어 미술관 전시회 의사 타진이 있었다. 동산방화랑(대표 박우홍)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 판매보다는 거꾸로 그간 꾸준히 수집해온 지아유푸(賈又福) 등 주가가 수직 상승 중인 중국 현대미술 대가의 작품을 들고 나와 현지 화랑들의 끈질긴 역판매 제의를 받았고, 샘터화랑(대표 엄중구)은 찰스 아놀디, 샘 프랜시스 등 서구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관객의 눈길을 잡았다. 중국 작가로는 국내 미술 팬들에게도 낯익은 류에민준(岳敏君), 장샤오강(張曉剛) 등 국제 미술계에서 각광 받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모였다. 한국화랑협회 국제이사인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상하이 아트페어의 성공적 개최에 자극받아 내년부터 열릴 베이징(北京) 아트페어에는 이미 한국 화랑 15개가 초청됐다"고 소개하고 "급성장하는 중국 미술시장 개척은 한국 미술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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