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한국 의료개혁 2010'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저수가와 저급여의 의료보험제도에 눌려 의료 소비자인 환자, 공급자인 의사 및 병원,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는 정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국민 입장에서는,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면서도 정작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MRI(자기공명영상법)등 고가의 비보험 검사비, 병실료 등 의료비의 50∼60%를 부담해야 한다. 결국 지금의 의료보험은 '할인 쿠폰'에 불과한 것이다. 병원 입장에서도 저수가 정책 하에서는 의사가 하고자 하는 적절한 진료를 할 수 없으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결국 '3시간 대기, 3분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정부 입장도 마찬가지다. 보험료 징수는 어렵고 지출은 많아 매년 보험료를 올리고 의사와 병원에 부당청구라는 굴레를 씌워 지출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여전히 보험 재정은 휘청거리고 있다. 정부는 얼마 전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외국 병원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조만간 의료 시장이 개방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 병원들이 지금과 같이 주차료나 병실료, 장례식장 수입으로 적자를 메워가는 상황에서는 밀려들어오는 외국 의료 시설과 경쟁할 수 없다.
이제는 의료도 하나의 산업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얼마 전 우리에게도 알려진 샴 쌍둥이 분리 수술에서 보았듯이 싱가포르는 정책적으로 의료 산업을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못지않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분야로 육성시켰다. 우리 국민들은 누구나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적은 부담으로 받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호제도는 강화시키되 민간보험 제도를 도입하여 의료 시장에 어느 정도 자율과 탄력을 주어야 한다. 우수한 연구기관에는 제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민간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맥킨지 보고서는 이제 걸음마 단계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지금부터 밑그림을 잘 그린다면 10∼20년 후에는 세계 최첨단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딸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사랑하는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 의료 정책의 자화상임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권 준 수 서울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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