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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보는 세상/ 왁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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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보는 세상/ 왁스 '관계'

입력
200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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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는 여성들의 대표적 판타지다. 불쌍하고 못된 남자를 참아 내고 보듬어 구원하겠다는 ‘착한 여자 증후군’은 시대가 변하고 희생자가 날로 늘어나도 기세가 마찬가지다. 한 때 TV 속을 누비던, 성공을 위해 착한 남성을 끊임없이 속이고 이용하는 악녀에 대해 여성들이 더더욱 분노하는 것만 봐도 그 판타지의 공고함을 알 수 있다.착한 여자에 대한 욕망 앞에서는 똑똑한 머리도 빼어난 미모도 별 소용 없다. 존 F. 케네디는 아내가 첫번째 아이를 유산했을 때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크루즈 여행을 즐기던 못된 남자였다. 하지만 그를 위해 도시락을 싸서 사무실에 가져다 주고 서류 가방을 들어 주고, 남편의 새 애인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겉으로 행복한 척 그가 이 세상 최고의 남성인 척 받들던 재클린의 행동을 착한 여자 증후군 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만난 가장 착한 여자를 꼽자면 다름 아닌 왁스의 히트곡 속 여자들이다. 우선 ‘화장을 고치고’. 우연히 찾아와 사랑만 남기고, 몇 년 동안 소식도 없는 남자를 기다리며 매일 화장을 고치는 여자의 노래다. ‘부탁해요’는 어떤가.

연인을 뺏은 다른 여자한테 그는 술을 많이 마시면 속이 안 좋고 담배 피는 여자 싫어한다는 등 조언을 아끼지 않고 “그를 나보다 더 사랑해 주라”고 당부하는 여자다. 새 노래 ‘관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결별을 선언하는 남자 앞에서 “헤어진 후 다른 사람 만나도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라 한다.

이 모든 착한 여자를 만들어 낸 이는 바로 남성이다. 세 곡 모두 인기 작곡가 최준영이 작사했다. 논리는 이런 것 아닐까? “우리 남자들은 못됐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원래 착한 여자들이 우리를 견디고 받아줘야 한다”는.

물론 그가 작정하고 착한 여자에 대한 판타지를 전파하고 있다 말한다면 억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늘도 수 많은 여성들이 왁스의 노래를 들으며 주변의 못된 남자를 용서하고 더 착해지자 마음먹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최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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