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미국 중국 대만의 3각관계가 요동치고 있다.양안 관계(중국―대만 관계)는 최근 대만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정부가 독립 움직임을 노골화하면서 긴장도가 높아졌다. 미국은 중―대만간의 긴장을 이용해 양측으로부터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 카드를 이용해 대 테러전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 카드를 활용해 대만에 무기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대만이 독립 색채를 강화하는 것은 내년 3월 치러질 총통선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천 총통의 민진당 정부는 국제적 위상 확대를 원하는 대만인의 희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선거 승리의 관건이라고 본다.
천 총통은 파나마 방문 길에 1, 2일 이틀간 경유지인 뉴욕에 머물면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2일 유엔본부 건물을 가리키며 "우리는 언젠가는 저곳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대만이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서 유엔에 가입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대만의 유엔 가입 노력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노선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천 총통은 앞서 지난달 25일 "국민투표를 거쳐 대만을 독립 주권국으로 규정한 신헌법을 2008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이에 대해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책동"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대만은 이밖에도 올해 9월부터 여권 표지에 기존의 '중화민국'이란 표기에 영문으로 'TAIWAN'을 병기하기 시작했다. 역사 재평가 움직임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대만 정부는 청나라 이전까지 시대만 국사(중국사)에 포함시키고 청나라부터는 세계사로 분류하는 고교 교과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이 9월 말 홍콩과 상하이(上海)를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 600∼900㎞의 지대지 미사일 발사실험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것은 공세적 방어능력을 갖춤으로써 독립을 위한 물리적 기초를 닦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은 지난달 16일자 홍콩의 주간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기고를 통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이전이 대만 독립의 호기"라고 주장했다.
대만이 독립 움직임을 강화한 배경에는 총통선거와 함께 미·중 관계 밀착에 대한 조바심이 깔려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달 차오깡촨(曹剛川) 중국 국방부장의 방미를 계기로 90년대 중반 이후의 냉각기를 벗어나 군사교류 정상화 단계로 진입했다. 미·중 군사관계 강화는 9·11 테러 이후 대 테러전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을 얻으려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전략적 필요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미국을 안보 보장자로 인식해온 대만은 미·중의 접근에 크게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만 중국시보는 2일 "미·중 관계 밀착으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대만의 전략적 지위가 크게 약화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대만의 독립 노선은 이런 점에서 대미 제스처의 성격을 갖는다. 미국이 계속 중국과 밀착할 경우 독립을 추진함으로써 양안관계의 긴장을 높이겠다는 경고 메시지다. 양안관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경우 미국의 개입과 이로 인한 중·미 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이용하는 셈이다.
미국은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억제하면서 무기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양세다.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14일 대만의 독립 찬반 국민투표 추진과 관련, "양안관계의 변화를 초래할 어떤 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통일도 독립도 아닌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바란다는 의미다.
미국은 이러한 명시적인 발언과는 달리 암묵적으로는 대만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30일 "미국이 대만의 군 구조 개혁과 방위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은 대만에 중국의 군사력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공군력 증강을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만 군사력 증강 시도는 곧 무기판매를 확대하겠다는 속셈이다. 천 총통은 최근 군비증강을 위해 150억 달러의 특별회계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대만 정치권은 미국의 보다 확실한 안보보장을 요구하며 특별회계안의 통과를 미루고 있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에 접근하는 동시에 중국에 투자한 대만 경제인을 이용해 대만 정부를 압박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차오깡촨 중국 국방부장은 지난달 28, 29일 워싱턴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과 부시 대통령을 차례로 만나 대 테러전 및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협력을 약속하며 대만 문제에 관한 미국의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경제인을 통한 중국의 대만 압박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달 20일 천 총통의 주요 지지세력이었던 대만 재벌기업 총수들이 중립적, 또는 반대진영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총통선거를 앞두고 양안관계에 또 다시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천 총통이 지지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양안관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중국의 무력 위협이 커질수록 독립파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中-대만 무역·투자는 되레 확대
중국과 대만의 정치·군사 관계는 긴장 상태이지만 서로간의 무역과 투자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양측의 경제 교류가 20여년 이상 지속되면서 중국 내에는 대만 기업 5만 6,000여개가 진출, 총 600억 달러(72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대만 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금년 8개월 동안 중국과 대만의 교역액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 늘어난 28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대만이 중국에 수출한 규모는 전년 대비 19% 늘어난 220억 달러,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36% 상승한 66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해 중국에 대한 대만의 수출은 294억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에 가장 많은 수출을 하는 나라는 일본이며 그 다음이 대만이다. 또 대만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4.2%에 이른다. 대만에서는 중국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대만 기업들의 투자는 지난 해에는 1999년보다 5배나 증가한 67억 달러에 달했다. 대만 자본들이 홍콩을 통해 간접 투자하는 것까지 합치면 중국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는 대만이 될 것이라고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보도했다.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은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자유화하는 조치를 조심스럽게 취해왔다. 그러나 천수이볜 총통이 대만 독립 추진 등 중국과의 긴장을 유발하는 발언을 계속하자 대만 기업인들은 양안 간의 경제 교류에 차질이 생길까봐 우려하고 있다. 대만의 주요 기업인들과 천수이볜 총통 간에는 경제 교류 확대의 폭을 놓고 신경전마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만은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대만 독립의 경제적 토대를 만드는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경제 협력 강화가 결국 통일로 가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속셈은 이처럼 다르지만 중국과 대만은 이미 경제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돼 버렸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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