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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현장/ 벽화가 있는 마을 부천 원종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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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현장/ 벽화가 있는 마을 부천 원종2동

입력
2003.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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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꽃이야!" "이건 울 아빠가 칠했어."동네 개구쟁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왁자지껄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게 늘어선 담벼락에 줄지어 선 아이들은 저마다 솜씨를 뽐내며 벽을 어루만진다. 복지관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때운 동네 노인들도 끔벅끔벅 가을볕에 묻혀 벽안에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고승들은 주야장천 벽보고 수행한다는데 우린 저 벽만 보면 마음이 편해져, 허허."

경기 부천시 오정구 원종2동 거칠개 마을 조약돌1로엔 100m짜리 벽화가 있다. 관공서나 기업체가 도시 미화 차원에서 그린 벽화야 흔하디 흔한 세상에 한줌 자랑거리도 안 된다고 퉁 놓으면 그만이지만 주민들의 벽화사랑은 남다르다. 주민들이 직접 아크릴 붓 들고 벽화를 그리고 색칠했기 때문이다.

칠이 벗겨진 다세대 주택과 빌라가 빽빽이 들어찬 낡은 마을로 통하는 조약돌1로는 가장들의 출퇴근길, 아이들의 등하굣길, 주부들의 시장길, 노인들의 나들이길이다. 그 길을 따라 빌라촌과 경계를 알리는 담은 길이 100m, 높이 160㎝. 예전엔 '주차금지' '낙서금지' 옆으로 '댁이나 낙서 마시오' 하는 장난과 음화패도(淫畵悖圖) 등 온갖 낙서가 어지러웠다. 그나마 부천시가 5년 전에 그린 벽화도 색이 바래고 칠이 벗겨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벽화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관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곤 쯧쯧 혀만 차고 말았다.

'주민과 함께 벽화 그리기' 아이디어를 낸 건 담장을 바라보고 선 원종종합사회복지관의 홍갑표 관장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골목 벽이 지저분해서 늘 마음이 아팠다"던 그는 9월부터 그림 그리는 지인들을 수소문하고 벽화 그림동아리 '미술시간'을 섭외했다. 시에서 한 달이나 걸려 완성했던 벽화를 예산 300만원으로 주민들과 함께 3일만에 완성한다는 계획이 내심 불안했지만 참가 희망자가 50명을 훌쩍 넘어섰다.

일단 기존벽화를 벗겨내고 레몬 색 페인트로 벽을 발랐다. 지난 달 9일 미술시간 회원 10여명은 주민들이 칠하기 쉽게 밑그림을 그리고 벽화 내용도 뜻 모를 기하학 도형이 아니라 30여명의 인물이 평화로운 표정을 짓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잡았다.

드디어 다음날인 10일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벽화 그리기가 시작됐다. 먼저 동네 개구쟁이들이 담에 종알종알 늘어앉아 벽 아래 풀과 꽃을 그렸다. 소식을 듣고 멀리 다른 마을에서 찾아온 이들도 붓을 들었다.

마실 나왔다 팔짱 끼고 "잘 그리네" 훈수 두던 마을 아저씨도 "나도 그릴 수 있는겨" 하곤 붓 들고 페인트 방울 뚝뚝 슬리퍼에 묻혀 가며 색칠을 하고 나물반찬 장에 갔다 돌아오던 아낙은 장바구니 팽개치고 벽화 삼매경에 빠졌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실수야 당연한 일이지만 주민들은 밑그림 선을 따라 정성을 다해 페인트를 칠하고 그림에 명암까지 넣었다. 3일 동안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고 의심의 눈초리로 벽화 작업을 총괄했던 미술시간 회원들도 주민들의 실력에 감탄했다.

주민 김혜연(25·여)씨는 "벽화를 구경하는 노인들, 학원도 제치고 그림에 열중하던 고사리 손들… 함께 그린다는 게 감동일줄 몰랐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지치고 피곤한 귀가 길에 미소를 선사하는 벽화가 완성됐다.

원종2동 주민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자발적인 참여는 관을 움직였다. 오정구는 아예 내년부터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벽화 그리기'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김인규 구청장은 "인건비가 많이 들어 꺼렸던 일인데 주민들이 방법을 알려준 셈"이라며 "경인고속도로 옹벽과 고강굴다리는 물론이고 마을 곳곳에 방치된 담을 주민과 함께 꾸밀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천=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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