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대신 다른 역이라면 휴고 위빙이 연기한 악당 스미스가 어떨까요. 영화에서 네오를 제외하고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아닐까요.(웃음)" 배우들은 종종 촬영이 끝나도 자신이 연기한 배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초대형 히트작 '매트릭스' 3부작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39)가 '네오'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미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서 열린 '매트릭스―레볼루션'의 시사회 후 가진 인터뷰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별로 까다롭지도 않은 질문에 머리를 긁적였다. 여자의 손으로 가려도 딱 가려질 듯한 작고 갸름한 얼굴의 그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고뇌하는 '네오'의 모습이었다.
"글쎄 많은 사람들은 네오가 나의 연기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 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영화 속의 배역을 그저 즐겼을 뿐입니다. 물론 즐긴다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액션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과거(평범한 해커) 네오에서 현재의 네오(구원자 '더 원')로 내적 변화를 겪어 가는 과정을 나는 꽤나 즐기면서 연기했거든요." 그는 " '과거의 내가 어땠는가'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게 '매트릭스' 3부작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했다.
"항간에는 2,3편 성공으로 1억 달러는 벌게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는 말에 그는 "세상에, 1억달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와우, 물론 그렇게 된다면 고마운 일이죠." 리브스는 1편에서 1,000만달러(러닝 개런티 10%)를 받았으나 2, 3편에서는 각각 1,500만달러에 15%의 러닝 개런티를 받기로 계약, '1억달러 수입'이 그리 허황된 추측인 것만도 아니다. "할리우드에는 나 같은 배우가 꽤 많을 것(Handful)"이라고 겸손해하면서도 "그게 누구냐"는 물음은 그저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영화 속 요원 스미스는 네오와 결투를 하면 할수록 힘이 늘어나는 인물. 결국 스미스는 자살을 시도한 베인의 몸을 빌어 인간 세상에 침투하는 데 성공한다. 스미스의 지배를 받는 베인과의 대결에서 네오는 시력을 잃는다. "스미스와 빗속에서 대단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촬영할 때 휴고 위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말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고요. 결국 보이는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시력을 잃는 것 역시 드라마틱한 요소로 설정됐는데 보세요, 영화에서 네오는 보일 때와 다름없이 할 일을 다 하잖아요.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눈 멀 일이 많지요. 사랑도 결국 눈이 멀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요."
영화 속에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로 나오는 모피어스 역의 로렌스 피쉬번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그 사람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지하고 때론 유쾌한 사람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렇지만 실제 생활에서도 그는 거인(Giant)이에요." 반면 영화 속 연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아쉬움이 없는 표정이었다. "사실 대본을 읽으며 처음엔 놀라기도 했지만, 드라마틱한 설정 아니냐"고 말했다. 9월10일 출산한 캐리 앤 모스와 리브스는 촬영장에서 그다지 사이 좋은 커플은 아니었다는 게 할리우드의 소문이다.
레바논에서 지질학자인 아버지와 쇼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브스는 이혼한 어머니와 뉴욕으로 건너와 학창 시절에는 아이스 하키 선수로 '철벽'(The Wall)이란 별명을 얻었다. 리버 피닉스와 공동 주연한 '아이디호'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나, 웅얼거리는 듯한 말투와 섬세한 표정 연기가 부족해 연기파 배우로는 대접 받지 못했다. 1994년 '스피드'를 통해 액션 스타가 된 그는 액션 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오가며 꾸준히 '연기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독스타'에 이어 새로운 록밴드 '베키'(Besky)를 결성한 록커이자 오토바이광(狂)이다. 하와이 원주민 말로 키아누는 '언덕을 넘어온 소슬바람'이란 뜻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그가 어떤 이미지로 팬들에게 다시 상큼한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그는 요즘 서사극 '콘스탄틴'을 촬영하고 있다.
/버뱅크(미 캘리포니아)=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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