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횡성의 금불산은 예전 금광이 있어 흥청거렸다는 곳. 지금이야 쇠락한 지 오래 돼 인적마저 드물다. 국도를 빠져나와 산 허리를 감아 난 좁은 길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한참을 더 가야 하려니 싶었다. 천문대가 섰을 만한 정상은 아직 아득해 보였으므로. 그런데 산길을 두어 구비 돌았을까? 돌연 시야가 트이면서 길 아래 개울가에 아담한 집 대여섯 채가 옹기종기 나타났다. 길은 거기서 멎었다. 의아해 살펴보니 한 집 마당에 둥근 반원형의 지붕 하나가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모습으로 앉았다. (확실히 서 있다기보다는 앉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해발 300m는 족히 넘는 지대라고는 하나 그래도 산 기슭 개울가에 천문대라니. 산 속답게 사위는 조용하고 주변을 둘러싼 낙엽송 숲은 노랗게 물이 들었다. 알루미늄으로 된 천체관측 돔(dome)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겨우 작은 이층집 만한 관측 돔에 딱 그 크기에 어울리는 손님용 통나무 숙소 서넛, 마당 한켠의 닭장과 살림집…. 가을 동화책 속에 삽화처럼 예쁘게 들어앉은 여기가 '우리별 천문대'다.마당에 들어서자 흰둥이 강아지 '나나'가 먼저 꼬리를 치며 달려들었다. 이 곳 천문대장(명칭이 거창해선지 본인은 극구 소장이라고 하지만) 유종록(柳鍾綠·40)씨의 동갑내기 아내 김광미(金光美)씨가 환한 웃음으로 맞았다. 교사 연수를 위해 미리 답사 온 경북의 선생님을 배웅하고 돌아선 참이다. "손님이 왔는데 뭐해요. 빨리 오지 않고." 김씨의 휴대폰 성화에 잠시 후 유씨가 급한 걸음으로 개울 쪽에서 나타났다. "오신다기에 민물가재 좀 잡아 구워 드리려고요." 서두르느라 손가락 마디만한 놈 여섯, 일곱 마리 밖에 못 잡았단다. 표정이 여느 시골농부처럼 순진하다.
유씨는 원래 이곳 산골마을 사람이 아니다. 너른 들이 있는 전남 함평이 고향이다. 대학 때(전공은 천문학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했다)부터는 줄곧 서울 한복판에서 살았다. 이런저런 어려운 여건으로 중퇴를 하고는 기술을 배워 양복점을 차렸다. 그 때 앞 가게 주인의 아내 친구로 사귀게 된 김씨는 서울 태생이다.
"매일 복작거리며 살아야 하는 서울생활이 영 싫었습니다. 늘 고향풍경이 그리웠지요. 그러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인 큰 아이가 세살 때 골목 옆집에 놀러갔다 화상을 입는 일이 일어났어요. 다 서울생활 때문이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정나미가 딱 떨어집디다."
꼭 10년 전이었다. 마침 연로한 장인 장모가 "공기 좋은 곳에서 살겠다"며 횡성 양덕원이란 곳으로 들어간 즈음이었다. 미련없이 서울살림을 걷어치우고 처가에 합류했다. 거기서 고향음식인 낙지전문점을 하다 3년 전 다시 이 곳을 찾아 들어왔다. "누구나 전원생활을 꿈꾸면 강원도 산골모습을 떠올리잖아요. 여기가 바로 그런 곳 아닙니까. 조용하고 울창한 숲에, 무엇보다 집터 앞 맑은 개울이 너무나 맘에 들었습니다."
2년 동안 땅을 일궈 직접 집들을 지었다. 장인장모도 모시고 장어·홍어 음식점을 열었다. 워낙 후미진 곳이라 장사야 잘 될 리 없었지만 제대로 찾아낸 자연 속에 흠뻑 빠졌다. 그러던 차에 사업하는 손위 처남이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하더란다. "일본에는 산 좋고 공기 좋은 곳마다 작은 사설(私設) 천문대란 게 많다던 데…." 아, 그렇지않아도 서울생활 10여년간 잃었던 밤하늘을 여기서 찾아내고는 얼마나 황홀해 했던가.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천문대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크게 어렵진 않았다. 비용도 그다지 많이 들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경험많은 기술자를 불러다 비가 새지않는 튼튼한 관측 돔을 짓고 GPS 수신장비가 갖춰진 망원경을 들였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천구(天球) 모양을 재현하는 플라넷타리움(천체투영관)도 지었다. 지난해 9월 말 천문대 문을 열면서 인터넷 사이트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과연 사람들이 찾아줄까?'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별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았다. 하기야 누군들 별에 얽힌 기억 한두 가지 없는 이가 있으랴. 설사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이 없더라도 어릴 적 고향마을에서, 혹은 자란 뒤에 친구들과 여름방학 바닷가에서 올려다보던 경이롭던 밤 하늘, 그 쏟아지는 별빛에 띄워보던 앞날의 꿈, 그마저 없다면 학창시절 알퐁스 도데의 '별'이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배우며 그렸던 이미지라도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알음알음 가족들이 찾아오고 입 소문이 나면서 단체객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내방객이 많지 않을 때는 유씨가 직접 별자리를 안내하지만 단체손님을 위해서는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듣도록 한다. (이날 오후에도 수도권의 대학생 30여명을 위해 서울에서 전문강사 조현민·趙顯玟씨가 내려왔다)
산 속의 밤은 일찍 찾아오게 마련. 이날도 학교 갔던 두 아들 진수와 현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길을 걸어 돌아오자마자 곧 어둠이 내려앉았다. "일기예보에선 날이 맑을 거라고 했는데…." 수시로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구름에 유씨는 시종 좌불안석이었다. 그 와중에도 달빛을 받아 희미한 동쪽 산등성이 위 양떼구름 사이로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건듯 떠올랐다. "저게 화성입니다." 마치 제 것인 양 유씨의 말투에 한껏 자랑스러움이 담겼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날 던진 첫 질문란 게 "겨울철 별자리니, 여름철 별자리니 하는데 그럼 철마다 보이는 별이 완전히 다른 거냐"였을만큼 밤하늘에 무지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찾을 줄 아는 별자리란 게 오로지 큰곰자리(북두칠성) 하나 밖에 없었으니. (혹시 그래도 같은 처지가 있을까 싶어 답변을 붙인다. "밤 하늘의 별자리야 변할 리 있겠습니까. 다만 지구가 공전을 하니까 계절에 따라 특정한 시간대의 하늘 모습이 다른 것 뿐이지요. 또 지구의 자전에 따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 동 틀 때까지 밤하늘의 별자리는 계속 둥글게 이동하는 거지요. 어느 철의 별자리라는 건 그 중에서 그 계절 저녁 무렵에 보이는 별자리를 말하는 겁니다. 가령 겨울철 '대표' 별자리라고 하면 겨울 저녁 하늘의 중앙에 위치하는 별자리를 일컫는 것이지요.)
그러나 비록 맑게 개인 하늘은 아니었어도 유씨와 강사 조씨의 얘기를 듣고 올려다 본 밤하늘은 이전 무심히 보던 것과는 완연히 달랐다. 관측 돔의 망원경과 뜰을 오가며 본 별들은 비로소 천상의 것이 아니라 생전 처음 손 닿는 거리로 내려 앉았다. 백조자리의 별들은 정말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고, 이디오피아의 왕비 카시오페아는 천형을 받는 모습으로, 그의 딸 안드로메다는 우아하게 앉은 미인의 모습으로, 또 천마(天馬) 페가서스는 막 날개를 펴고 웅비하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떠올랐다. 희뿌연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앉은 견우와 직녀의 사연도 자못 그럴 듯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아름다운 밤하늘의 향연을 매일 보며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좋지요. 별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요. 그렇지만 어떤 때는 하늘이 너무나 냉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별들이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떠 있는 것을 보면요. 오리온 자리가 낮게 떠 크게 보일 때는 무섭게 보이기도 하고, 또 겨울에 시리우스를 보면 더 춥고 여름에 직녀성을 보면 왠지 더 더워지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유씨는 거의 별과 감정을 교류하는 수준이다.
이들 부부의 사랑도 별만큼 예뻐 보인다. 사실 부부가 고즈넉하게 함께 앉아 별을 보는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남편은 손님들이 원하면 밤을 꼬박 새워가면서 관측장비를 조작하며 설명해야 하고, 아내는 수십 명 손님들의 그 엄청난 저녁식사 설거지를 마친 뒤에도 때로는 뜰에서 캠프파이어나 바비큐 파티를 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방객이 뜸한 날이라야 비로소 둘은 한가하게 마당 평상에 나와 앉는다. 그럴 때면 늘 아내에게 고마워하는 유씨가 곧잘 은근한 말을 건넨단다. "저 별들로 멋진 목걸이나 하나 만들어줄까?" 글쎄, 별을 보며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라면 40대 부부 사이에 이렇게 달짝지근한 사랑의 대화가 어떻게 가능할까.
유종록씨는 정작 별을 보며 얻는 가장 큰 교훈은 따로 있다고 했다. "매일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삶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하늘, 아니 우주가 내게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내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더 이상 내가 미물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실감하게 되지요. 그리고 별들이 늘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나쁜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별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힘도 주고, 삶을 바르게 지켜주기도 하지요."
자, 그러니 여러분,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우리도 가끔씩은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삽시다. (공기 혼탁한 서울에서도 1등성은 충분히 보인단다) 하늘이 내려주는 이런 공짜 축복을 외면할 이유가 없으니.
/편집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