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정치자금 비리는 정당의 불투명한 자금관리 관행과 고비용 구조에 원인이 있지만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정치자금법에도 문제가 있다.우선 정당과 후보자에게 허용된 선거자금 규모가 비현실적이다. 16대 총선에서 선거비용 제한액은 지역구 평균 1억2,600만원이었지만 "그 돈으론 몇 일도 못 버틴다"는 게 출마자들의 항변이다. 실제 출마자 인터뷰 조사에서도 평균 지출액은 한도의 4배가 넘는 5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불법·비공식 경비는 제외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선거자금 지출한도는 341억원이지만 SK로부터 100억원을 수수한 한나라당은 이미 한도를 훌쩍 넘겼고 노무현 후보측도 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후원금 한도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불만을 토로한다. 당 후원회가 모금할 수 있는 돈은 개인 1억원, 법인 2억원으로 제한돼 있다. 더구나 개인의 기부금 총액이 1억2,000만원(법인 2억5,000만원)으로 묶여 있어 한 정당에 한도만큼 내면 다른 정당에는 후원금을 낼 수 없다. 기업이 임직원 명의로 편법 처리하거나 불법으로 비자금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보 경선이나 지자체 선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출마자의 경우 개인후원금 한도 6억 중 절반만 사용이 허용된 데다 기탁금 2억5,000만원을 제외하니 합법적인 경선자금은 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5,000만원으로 어찌 16개 시도를 도느냐"는 볼멘 소리까지 나왔다. 지자체 선거 출마자는 후원회조차 만들 수 없어 합법적 자금조달 창구가 전무한 실정이다.
수입보다 지출 규제 위주로 짜여진 정치자금법도 탈법을 조장하고 있다. 선관위는 지출내역은 수시로 보고 받지만 후원금은 총액 이외에 구체적 내역을 파악할 수도 없고, 조사권을 행사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한도는 있지만, 일종의 백지수표인 무정액 영수증이나 100만원 이하 익명 후원금을 통해 탈법적 모금이 이뤄질 여지가 크다. 후원금 영수증 처리 시한을 두지 않은 것도 회계 조작을 가능케 한다. 다수의 소액 후원금 보다 거액의 기업 후원금을 선호하고 의존하는 정당의 체질도 문제라고 선관위는 지적한다.
정당의 고비용 구조와 불투명한 자금관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선거 때마다 동원되는 방대한 지구당 조직은 '돈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다. 농촌 지역에서의 향응과 금품 살포 관행도 여전해 정당·후보연설회에 1명 동원하는 데 3만∼5만원이 든다는 게 정설이다. 한나라당이 대선 때 지구당에 1억3,000만원씩을 내려 보냈다는 소문도 같은 맥락이다. 유급 사무원을 중앙당에 150명, 지구당에 5명씩 둘 정도로 관료조직화한 정당 조직도 정치자금 수요를 늘리고 혼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반면 정당의 회계처리는 '구멍가게' 수준이라고 혹평 받을 정도다. 여러 계좌를 통해 현금으로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지출 내역도 부정확하고 불법자금도 자연스레 녹아 든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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