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너무 작고 시설이 안 좋은 건 저도 알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요즘처럼 극장 구하기 힘든 때 공연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대학로에서 연극 '보이첵'을 공연하고 있는 극단 사다리 관계자는 출연 배우가 10명이나 되는 공연 규모에 비해 무대가 너무 작다는 평에 그렇게 대답했다. 연출자는 배우들이 좁은 무대에서 서로 부닥치지 않도록 동선을 만드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대학로 소극장들은 "소극장에서는 연극 하기 싫다"는 중견 연출가가 있을 정도로 대부분 시설이 열악하다. 그러나 막상 공연을 하려면 이런 소극장들도 구하기 어려워 애를 태우는 게 연극계의 현실이다. 1998년 40개이던 대학로의 소극장은 현재 24개로 줄어들었다. 83년 개관한 이래 대학로 소극장의 대명사로 불려온 '바탕골 소극장'이 임대료 인상으로 문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극장 주인들은 "흥행에 성공해도 기껏해야 100석 조금 넘는 극장에서는 임대료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이대로 가다간 대학로 소극장은 전멸하고 만다"고 입을 모은다.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금의 상황에서 대학로에서 소극장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한국 연극계의 '돌연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소극장 시설 개·보수 및 운영 지원이 절실하다. 규모가 큰 연극을 공연할 수 있도록 대학로에 중극장을 증설하는 일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 논리를 앞세운 정부 관료들의 근시안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2004년 문예진흥기금의 사업 예산 심의과정에서 소극장 임차운영사업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문예진흥원에서 학전 블루 소극장을 임대해 관리해온 이 사업은 소극장의 경영난을 타개하고 활성화를 꾀한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도 기획예산처는 학전 블루 소극장의 운영이 정상화했다는 궁색한 이유를 들어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이다. 단지 그 때문이라면 문예진흥원에서 학전 블루 소극장 말고 다른 소극장을 임대 운영할 수 있게 하면 될 것이다. 연극인들은 '좋은 무대에서 좋은 작품을 공연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 하나로 대학로를 지키고 있다. 정부가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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