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풍미하던 '서바이벌' 게임이 브라운관 밖으로 뛰쳐나왔다. 최근 공연되고 있는 '서바이벌' 게임 가운데 진수는 단연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하여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벌어진 혈투다.민주당의 선공에 의해 시작된 그 혈투는 한 편의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것인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그것은 민주당 사람들에겐 자신들의 생존과 더불어 명예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혈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의 혈투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다른 카드가 없는 민주당으로선 앉아서 잠자코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했을 법 하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이런 블랙 코미디의 원인 제공자는 민주당 탈당파다. 이들은 '독선과 배제의 담론'을 구사했다. 이들은 더 많은 수의 의원이 남아 있는 민주당을 '잔류 민주당'으로 부르는 오만을 저지르면서 그 '잔류파'들을 반(反) 개혁세력 및 지역주의 기생 세력으로 몰아 붙였다.
오랜 세월 따로 놀았던 정당들 사이에선 그런 욕설이 상투적인 정치 수사로 통용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정치적 동지로 지내왔던 사람들 사이에선 원한(怨恨)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열린우리당이 '여당 프리미엄'을 한껏 활용하여 내년 총선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반면 민주당이 몰락하게 된다면, 민주당 의원들은 졸지에 반 개혁세력이자 지역주의 기생 세력이라는 판정을 유권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셈이니, 그들이 어찌 처절한 혈투에 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오물을 씌우고 떠난 탈당파가 얼마나 깨끗한지 두고 보자며 그 가면을 벗겨주겠다고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셈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통해 한국 정치가 깨끗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담담하게 보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정치판이 경제를 죽이기로 작정했다고 아우성친다.
그 어느 쪽이건,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독선과 배제'는 원한을 낳고 원수를 만들게 돼 있다는 점이다. 억울한 피해자들도 나오게 돼 있다. 이것은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비교적 사소하고 불가피한 문제인가? 자신이 개혁파임을 자처하는 많은 네티즌과 지식인들이 '그렇다'는 답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여기서 열린우리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 할 '독선과 배제'가 그들만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그 어떤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집단정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못 풀린 역사의 업보를 단칼에 쳐버릴 수 있는 화끈한 해법에 대한 선호 의식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집단 정서'는 공정과 형평의 가치를 사소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공을 가져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형을 내려야 할 범죄자들에게도 공정과 형평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공정과 형평을 깔아뭉개도 좋을 만큼 절박한 개혁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반(反) 독재투쟁을 하던 시절에도 그러진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오만한 위선과 기만의 담론을 중단하고 겸허해져야 하며, 민주당은 배신감과 원한의 수렁에서 벗어나 투철한 자기성찰에 임하면서 포지티브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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