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산새/ 들에는 들새/ 물에는 물새/ 하고많아도/ 울음소리 예쁜 새는/ 열에 하나가 드물지./ 웬일이냐구?/ 이유는 간단해./ 듣는 사람이/ 새가 아니란 거야.'('새')소설가 이문구(1941∼2003·사진)는 2월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간 써온 동시를 손질하는데 매달렸다.
그는 평론가 유종호씨의 권유로 1983년부터 동시를 썼으며, 88년 아들의 이름을 넣은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를 출간했다. 올해 초 병상에서 시인 신경림씨를 만났을 때 그는 첫 시집 이후 동시를 발표하지 않은 데 대해 "손자 손녀를 키우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쓰려 했다. 그럴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미리 60여 편의 동시를 써놓았다"고 털어 놨었다.
그렇게 쓴 동시를 모은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가 출간됐다. 15년만의 두번째 동시집이고 유고작이다. "산복이와 자숙이가 낳을 손자와 손녀를 위해" 일찌감치 써둔 동시 66편이 묶였다. 그는 질박하고 토속적인 문장에 훈훈하고 인간적인 농촌 정경을 담았던 소설가다. 손자 손녀들이 시골 마을의 풍경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면 어쩌나 싶은 안타까운 마음에 고인은 들길과 벼이삭과 논배미 같은 사라져가는 옛 모습을 불러낸다. 동시에서는 울음소리 예쁜 새들이 지저귀고, 건너편 산기슭에 나뭇가지 입김 같은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누구 바스락 소리가 더 큰지 시합하는 마당가 가랑잎들이 있다. 그 다사로운 것들은 재미난 노랫가락 같은 싯구에 담겼다.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쑥부쟁이 꽃'의 몇 구절. '쑥밭엔 쑥만 있고/ 쑥부쟁이는 없더니/ 쓰름매미 쓰름쓰름/ 쓸쓸히 울고/ 하늘엔 기러기/ 밤에 서리가 오면/ 시들은 쑥밭에/ 한 떨기 쑥부쟁이 꽃' 가난하고 소외된 농촌의 아픔을 그린 소설처럼 고인의 동시에도 고단한 삶이 물들어 있다.
옛날 밥밖에 모르는 자식을 둔 부모들의 소망은 "밥이나 먹고 살면 되지, 뭐"였고 ('밥뿐이 언니'), 허리 굽은 할머니는 산나물을 캐어 내다팔고 손자들 시중을 드느라 허리 펼 새가 없었다.('고사리 할매')
고인이 들려주는 노래에서 아이들은 꽃과 풀과 흙과 열매와 함께 자라난다. 그애들의 옷은 낡고 해졌지만 세상 어느 것보다 향기롭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자 손녀들에게 이문구가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이 향기였다.
'옛날 아이들은 장난감이 귀해서/ 겨울이 가면 풀밭에서 놀았는데/ 풀물이 들고/ 꽃물이 들어서/ 깁고 기운 옷인데도/ 봄 냄새가 났다나요.// 옛날 아이들은/ 먹을 것도 귀해서/ 여름이 가면/ 감나무 밑에서 놀았는데/ 감물이 들고/ 흙물이 들어서/ 땀이 밴 옷인데도/ 풋과일 냄새가 났다나요.'('옛날 아이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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