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수출로 버티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선자금 조사는 재계를 크게 흔들고 있다. 재계 총본산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손길승 회장이 SK비자금 문제로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동안 재벌개혁은 말뿐이었으며, 정경유착은 여전히 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재계는 억울하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우리의 풍토에서 정치권의 음성적 비합법적 정치자금 요구를 외면할 배짱 있는 기업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재계의 주장은 일리가 없지 않지만, 사안의 핵심은 아니다. 재계가 대가를 기대하고 불법자금을 제공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더구나 규모도 엄청나다. 재계로서는 또 할 말이 있을까 싶다.
재계는 이제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전경련이 제도개혁 없이는 더 이상 정치자금 제공을 중단키로 한 조치를 주목한다. 전경련은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 제고 등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개별기업 차원의 정치자금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전경련의 방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특히 경제분야는 그 정도가 심하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결의니 선언이니 하면서 적당히 위기를 넘기던 시대는 지났다. 불법 정치자금 연루기업은 생존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시장이 놔두지 않는다는 점을 기업인들은 인식해야 한다.
불법정치자금 요구에 기업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정치권이 이런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 "다시는 과거 문제로 불행해지는 기업과 기업인이 없어야 한다"는 손 전 회장의 때늦은 회한을 재계는 가슴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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