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이트 지음·박영준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2만5,000원
'학대 받는 아동 많아…85.5%가 부모에 의한 학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알리는 최근의 한 신문기사 제목이다. 이것만 보면 아동 학대의 주범은 놀랍게도 부모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부모에 대한 이야기인가? 저명한 진화심리학자 윌슨과 데일리는 1976년 미국의 경우 계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가 친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에 비해 학대 받을 가능성이 100배나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일이 있다. 물론 이런 결과가 부모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학대 받는 아이가 꼭 생긴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구에는 '누가 왜' 아동을 학대하는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늘 아쉽다. 예컨대 "아동학대는 부자 가정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고, 이어 일반 가정, 모자 가정, 재혼 가정 등의 순"이라고만 할 뿐, 전체 재혼 가정 중에서 얼마 정도가 이런 학대의 온상이 되고 있는지와 같은, 정말로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윌슨과 데일리의 연구가 크게 주목된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은 바로 이런 디테일에 주목하여 인간의 정신 기관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 원리를 입증한다.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라이트의 역작 '도덕적 동물'은 이런 진화심리학이 도대체 어떤 시도인지, 그리고 작금의 인문·사회과학에 얼마나 큰 도전인지를 대중적 필치로 집대성해 놓았다. 진화심리학은 사회생물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현대 진화론적 이해이다. 따라서 성과 사랑의 문제로부터 가족과 정치, 그리고 도덕과 종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현대 진화생물학의 기본 원리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지 거의 10년이 지난 오늘, 진화심리학은 라이트의 예언대로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연구 전통이 될 만큼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도덕적 동물'은 진화심리학을 대중에게 거의 처음으로 알려준 고전이다. 혹자는 대중과학서가 무슨 '사이언스 클래식'이 될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도덕적 동물'이 최근까지 진화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책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자는 책 전체에서 다윈의 인생을 추적하면서 그가 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특성들을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독창적 과학대중서가 어떤 것인지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외견상 두껍고 무거워 보여서 처음에는 주저하게 되지만 읽다 보면 여러 차례 무릎을 칠 정도로 단숨에 빨려 들어간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적 동물'은 대중과학서의 모범인 동시에 그 이상이다.
우리나라에도 진화심리학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을 강의하거나 설명하다 보면 마치 대단한 반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상기된 목소리로 묻는 분들이 있다. "동성애도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진화심리학에서는 생존과 번식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최근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요?" 자살에 대한 궁금증도 자주 나오는 질문의 하나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라이트가 이 책에 부록으로 첨가한 '자주 나오는 질문'(FAQ)과 같은 것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이제 이 책이 번역돼 나왔으니 현장에서 설득하지 못한다 해도 조금은 안심이 될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 책이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진화심리학의 모든 분야를 다 포괄하진 못했다는 점이다. 최근 10년 동안 학자들은 인간의 언어 능력과 사고 능력을 비롯한 인지 능력 전반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진화심리학적 연구 성과를 이끌어냈다. 최근에는 예술과 같은 미적 능력을 진화론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그러고 보면 다윈이 퍼즐의 공백으로 남겨 두었던 부분, 그리고 그 다윈의 신봉자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살짝 보여 준 전체 그림이 서서히 전모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은 그 거대한 퍼즐의 밑그림이다. 이 책은 현대 진화론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진화심리학이 정말로 과학적 연구인지, 그리고 기존의 세계관과 학문에 어떤 충격을 던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고전이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을 '한갓 유전자 결정론에 근거한 이데올로기'로 여기는 분들에게도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적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제대로.
/장대익(서울대 박사과정, 생물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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