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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聯 마하티르총리 오늘 퇴임 "두얼굴의 권력자" 막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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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聯 마하티르총리 오늘 퇴임 "두얼굴의 권력자" 막후로…

입력
2003.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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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말레이시아를 이끌며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칭송과 '독재자'라는 비판을 함께 받아온 모하마드 마하티르(77·사진) 총리가 31일 권좌에서 내려온다.마하티르는 29일 압둘라 바다위 부총리와 함께 라마단 행사에 참석, 후계 작업이 완벽히 끝났음을 과시한 뒤 30일 의회 연설을 통해 말레이시아 경제 발전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지막 총리일정을 마쳤다.

1981년 평화적으로 집권한 뒤 5번 연임한 마하티르 총리가 이렇듯 순탄하게 퇴진한 배경에는 그의 탁월한 업적이 있다. 그는 집권 기간에 주석과 고무 수출이 고작이던 말레이시아 경제를 자동차, 정보기술 산업 등을 중심으로 재편, 경제규모를 4배 이상 키우면서 말레이시아를 세계 17위의 무역대국에 올려놓았다.

마하티르는 '동방정책(룩 이스트)'을 통해 일본과 한국의 고성장(개발독재) 전략을 채택, 88년부터 10년간 8%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는 그가 말레이시아 국민을 구성하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들간의 화합을 도모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87년 집권당인 통일말레이민족기구(UMNO) 총재선거를 부정선거로 판결한 대법원 판사를 해임하고 국가안보조례(ISA)를 이용해 반대파와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서 독재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그는 자신의 라이벌로 등장한 이브라힘 안와르, 무사 히탐 등 4명의 '넘버 투(부총리)'를 숙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는 그의 집권 22년을 '실용주의노선'으로 요약했다. 서구를 증오하면서도 서구 발전 모델을 따랐으며, 반미를 외치면서도 미국 자본 유치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그의 행적은 국부증진이라는 목표로 모두 수렴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97년 동남아 환란 직후 조지 소로스의 투지자본을 비난하면서 국제 자본의 요구와 달리 고정환율제를 고집한 결단과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반미 입장에 선 행적도 적지않은 국내정치적 반사 이익, 동남아 국제정치에서의 위상 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마하티르는 최근 권좌에서 물러나면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처럼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늦잠도 자면서 생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그를 보내는 말레이시아 국민들도 이제 그가 떠나야 할 때가 왔다며 담담하다. 마하티르에 대한 평가들은 여전히 극단을 달리고 있지만 그가 퇴임 후에도 별다른 위기 없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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