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현지 치안 사정의 급속한 악화가 추가 파병 규모와 시기 등을 결정해야 할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를 딜레마에 빠뜨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29일 해외파견 장병들과의 다과회에서 "추가 파병이 정말 걱정스럽다","마음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연발, 최종 결단자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노 대통령은 30일 오전엔 윤영관 외교장관, 조영길 국방장관,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따로 불러 추가 파병과 관련된 종합적인 상황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는 주로 이라크 상황 악화에 따른 대책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제2차 이라크 현지 조사단과는 별도로 미국에 협상 대표단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노 대통령이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대미 대표단파견은 우리가 제시할 파병의 구체적 내용이 미측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서주석 NSC 전략기획실장이 29일 국회에서 '파병 규모, 백지상태서 재검토'를 언급한 것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 방글라데시 등 파병 검토 국가들이 속속 파병 방침을 철회하고 있는 마당이어서 당장 우리의 추가 파병 방침에도 중대한 변화가 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서 실장은 30일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라크의 상황 악화 이후 노 대통령의 백지상태 재검토 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추가 파병 원칙을 결정한 10월18일부터 이미 백지상태 재검토가 시작됐던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그렇다고 정부의 고민이 감춰질 것 같지는 않다.
파병 시기와 관련해서도 '언제까지 결정을 미룰 수만은 없다'는 점에서 시일이 지날 수록 정부 입장은 난처해 질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파병에 정치적 고려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점에 비춰 보면 내년 총선전에 파병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내년 2∼3월에 군대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11월 중순께는 부대 등이 결정돼야 원만한 준비가 가능하리라는 얘기다. 결국 2차 조사단이 귀국하는 11월9일 이후, 그리고 미국에 보낸 대표단이 귀국하는 시점 이후가 파병 결정의 고비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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