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 종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가족이나 학교, 직장 등에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얽혀 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친척, 친구,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가하면서 알게 모르게 종교 간 대화를 해온 것입니다."천주교 '사랑의 씨튼 수녀회'가 설립한 씨튼연구원의 김승혜(金勝惠· 60·사진·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원장은 "남의 종교에 배타적인 사람은 자기 종교에도 깊이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종교 간 대화와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씨튼연구원은 1994년부터 종교간 대화 사업을 벌여 왔으며 매년 3∼12월 월 1회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고,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종교인 학자들 모임을 연 4회 열어 그 결과를 책으로 묶어 왔다. 창립 열 돌을 맞아 11월5일 중앙승가대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수행'을 주제로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
연구원 활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종교인 대화 모임의 회원은 길희성 목사(서강대 교수), 종범 스님(중앙승가대 총장), 해주 스님(동국대 교수), 유학자인 최근덕 성균관장, 최일범 성균관대 교수, 이정배 목사(감신대 교수), 양은용 교무(원광대 교수),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최현민 수녀(서강대 강사) 등으로 모두 종교인이자 학자이다.
그 동안 이루어진 대화 주제는 '선(禪)불교와 그리스도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수도생활' '유교와 그리스도교' '무교와 그리스도교' '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순례' 등이었다. 한 해에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토론하고, 강좌를 연다. 올해의 주제는 '그리스도교적 시각에서 본 유교의 시중(時中)'.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유교의 가르침을 기독교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는 조심스러웠지만 10년 동안 대화를 계속해 온 결과 지금은 회원들간에 신뢰가 쌓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됐지요." 회원들은 1년에 한번은 절이나 피정의 집, 수련원, 항교 등 각 종교의 관련 시설에서 모임을 갖고 기도나 의식 등에 참가해 상대방 종교를 체험해 보는 행사도 갖고 있다.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들끼리 순수하게 만난 게 모임을 지탱해온 힘입니다." 천주교 수녀로서는 드물게 유교와 도교를 전공한 그는 책으로만 알았던 다른 종교를 사람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1981년 하버드대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유교의 뿌리를 찾아서' '논어의 그리도교적 이해' 등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종교인들의 편견과 오해를 벗기는 것이 우리 사회의 종교간 갈등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학교 수업시간에 도교나 유교 이야기를 하면 보수적 교회 출신 학생들은 처음 반발하지만 강의를 듣다 보면 차차 이해하게 됩니다. '불교는 우상숭배' 라는 등의 편견과 오해를 없애는 것이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최근 기독교 신자가 줄어들고 불교 신자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기 시작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기독교는 우리 사회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지만 한국인의 심성에 맞게 토착화하지 못한다면 주변부로 밀려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스님들이 찾고 있는 불교의 진리도 내 시각에서 보면 하느님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둘이라고 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모든 종교의 길은 연결돼 있습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