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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재신임이 끝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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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재신임이 끝난 뒤?

입력
2003.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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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재신임 선언을 한 것은 꼭 20일 전이다. 그 동안 우리가 내보낸 기사들을 되돌아보면 쓴 웃음이 난다. 노 대통령이 이제는 "재신임 투표를 '거두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정치적 타결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내지 않던 토요일 대통령의 긴급회견 소식에 비상연락망을 가동하느라 호들갑을 떤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더 재미있는 것은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잘릴 뻔 했던 일이다. 16일자 '대한매일'에 "야당이 모두 반대하면 국민투표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이 보도된 뒤 노 대통령은 발언자를 엄중 문책하라고 호통쳤다. 그런데 지금은 노 대통령의 말이나, 당시 유 수석의 말이나 별 차이가 없다. 유 수석이 앞날을 꿰뚫어 본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알 수는 없다. 어떤 경우든 그는 결과적으로 다소 부당한 질책을 받은 셈이다.

노 대통령의 말들은 종종 상대에게 억울한 느낌을 들게도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언론의 잘못된 의제설정(Agenda-Setting)으로 정부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말이다. 세간 사람의 생각과 화제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게 매스컴의 기능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건 최강의 의제설정자는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수많은 행사에서의 발언, 정책결정권에서 국민투표 발의권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지위를 법이 보장하고 있다.

특히 재신임 선언 이후 노 대통령은 우리의 의제를 완벽하게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의제는 언제 어떻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가가 아니라, 재신임 정국이 어떻게 끝나는가에 모아져 있다. 잠깐 다른 '희망사항'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는 처음부터 재신임 정국에서 실익이 없었다. 열린우리당이나 청와대에게도 약발이 떨어져가는 시점이다. 대선자금문제도 다수의 부상자가 생기겠지만, 갈등의 고비를 지난 뒤에는 정치관계법 개정 등에서 여야가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이라크 추가파병, 동투(冬鬪)로 치닫는 노사관계 등 재신임 정국 종결과 타협의 명분이 될 만한 요소들이 하나 둘 씩 갖춰져 간다.

하지만 이 정국을 마무리 짓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큰 변화도 없겠지만, 정치판이 얼마나 달라지느냐는 것은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 대통령과 참여 정부가 얼마나 어떻게 변하느냐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 선언을 하면서 최도술 전 비서관 사건, 감사원장 인준 부결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낮은 지지율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지율 추락의 원인은 노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과 독단적인 의사결정 스타일, 자기의 위치를 착각하며 갈팡질팡한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다.

참여정부 스스로 달라지지 않는 한 혼란의 극복은 없다고 본다. 유감스럽게도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은 그대로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개편할 것이라는 청사진도 보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최근에도 "정치권이 반성할 줄 알았다"는 말로 혼선을 빚었다. NSC 사무차장이 '가이드라인'이라고 제시한 이라크파병 병력수를, 다음날 외교·국방장관, 심지어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외교보좌관까지 부인하는 사태도 있었다.

주연배우가 먼저 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연극이 끝난 뒤 객석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유 승 우 정치부 차장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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