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12일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전시관 앞 발굴현장. 초겨울의 짧은 해가 뉘엿뉘엿 자취를 감출 즈음 이 곳 웅덩이에서 국립부여박물관 발굴팀은 초국보급 백제향로를 발견, 밤중에 건져냈다. 1,300여년의 세월을 땅속에서 긴 잠에 빠졌다가 동화 속 선녀처럼 떠오른 이 향로는 이 해 겨울 내내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높이 62.5㎝의 세계 최대, 전대미문의 화려한 도상과 문양은 백제문화의 우수성과 신비를 다시 일깨우며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낳았다.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올해 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의 발굴 의미를 되새기고 연구성과를 정리하기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부여박물관이 11월 13·14일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국제회의장에서 여는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1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는 당시 발굴자들과 국내외 전문가들이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발표논문은 신광섭 중앙박물관 유물관리실장의 '능산리사지 발굴조사와 가람의 특징' 등 8편. 발굴 당시 부여박물관장으로 작업을 주도한 신 실장은 향로가 발견된 능산리사지의 정치적·역사적 성격을 밝히고 있다. 신 실장은 향로가 발견된 지 2년 후인 95년에 절터 목탑지 밑에서 나온 석조사리감에 주목했다. 사리감에 위덕왕(재위 554∼598)이 정해년(567년)에 아버지인 성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누이동생이 사리를 공양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향로가 공방지 수조에 급히 은닉된 것으로 보아 이곳에 있던 절이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하면서 운명을 같이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도교문화적 배경'을 발표하는 장인성 충남대 교수는 이 향로가 백제인에게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를 추적하면서 그 안에 담긴 종교적·정치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는 향로의 도상이 백제의 건국설화를 담았다거나, 불교의 연화장세계와 도교의 신선사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그 동안의 해석을 검토한 후 "유교 불교 도교가 함께 했던 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신성성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원위청(溫玉成) 중국 쩡저우(鄭州)대학 교수는 '부여 능산리사지에 관한 제문제'라는 발표문에서 "백제향로가 뤄양(洛陽)의 영녕사(永寧寺)에서 발견된 향로와 유사하며 향로 꼭대기와 몸체에 있는 새의 다리에 돌기가 있다는 점을 들어 봉황이 아니라 천계(天鷄)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 학자들은 고구려 벽화의 주작에도 돌기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제향로에 대해 그 동안의 연구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과 더불어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한 제안도 나온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의 의의'를 발표하는 이난영 동아대 교수는 "백제향로는 음악, 복식, 동물, 인간상 등 베일에 가린 백제문화의 성격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10년 동안 뚜렷한 연구 성과가 없었다"며 "본격적으로 학제간 공동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종만 부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아직까지 향로의 제작시기는 물론 그 안에 담긴 사상적 배경 등을 싸고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이번 학술회의는 백제대향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켜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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