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직장인이던 시절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하느라 지하철을 탈 때면 나는 늘 경이로움을 느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있기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할 수 있단 말인가! 가끔은 숙취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한 3년 가까이 나는 그런 경이로움을 잃지 않았다. 그 3년 동안 나는 세상에는 이다지도 많은 직업이 있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글을 써야만 하는가라는 문제로 고민했다. 아마도 소설을 거의 쓰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았다. 수학만이 최고의 언어라고 믿었던 시절에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나는 빅뱅이 일어난 뒤, 몇 분 동안의 일들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를 일이 일어났겠지만, 어쩐지 그걸 공부하다 보면 내가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 이면에는 기타리스트가 되려는 욕망이 짝패처럼 숨어 있었다. 같은 얘기다. 그 시절, 나는 구질구질한 서사를 싫어했다. 숫자나 음표라면 외계인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그만 택시 기사가 되고 싶었다. 내 적성에서 크게 벗어나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지도를 힐끔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즉시 내가 선 길의 속성을 파악해 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다 내 적성에 맞는 일이었음에도 결국 나는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글 쓰는 사람이 됐다. 이 지경에 이르고 나면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건 운명입니다'라는, 할인 마트에서 떨이로 팔면 딱 좋을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양자리인 나는 운명을 잘 믿지 않는 운명을 타고 났다. 무려 3년 동안이나 '내가 왜 글을 써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운명 때문에 글을 쓴다는 건, 이집트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노예로 일하던 유대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왠지 운명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모세처럼 수염을 길게 기른 재벌 3세가 나타나 "너, 지금 뭐하고 있니? 노후대책은 세우고 사냐?"라고 말하며 함께 일하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따라 나설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운명 때문에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노예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처럼 보였다. 운명이 아니라면, 그럼 왜 글을 쓴다는 말인가? 그러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진짜 할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대단히 유치한 대답부터 시작했다. 첫 번째 돈을 벌기 위해서. 대학교 때, 지나가는 행인의 숫자를 헤아리는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해 그 동안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일을 해봤다. 제일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불법 출판되는 일본 만화를 윤문하는 일이었다. 한 권을 윤문하면 2만원을 받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면 충분했다. 문학은? 글을 쓰는 일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거나, 혹은 노력의 대가를 가급적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대답은 틀렸다.
그 다음에는 명예를 위해서. 등단했다고 금배지를 달아주는 것도 아닌 바에야 문학인의 명예라는 건 불멸과 관련한 것이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 작품이 영원히 남아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 그런데 이건 근본적으로 내 폐쇄적인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다. 처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글을 긁적이기 시작했다. 글 쓰는 일이 영화감독처럼 다른 스태프와 함께 일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면 나는 퍼즐 왕이나 등대지기가 됐을 것이다. 지금은 하는 수 없다며 체념하는 처지가 됐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내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가 내 삶을 추적하고 짐작하는 일 따위를 감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죽고 나면 나라는 존재와 그를 둘러싼 모든 기억이 깨끗하게 사라져버리기를,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죽기 전에나, 죽은 뒤에나 나는 남의 눈길을 받는 일에 익숙해질 인간형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명예를 위해서, 불멸을 위해서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곰곰이 따져보면 돈이나 명예 같은 것은 글을 쓰다 보면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는 있는 것들이지만, 그것을 위해 글을 쓸 수는 없는 것들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쓰는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문학을 쇄신하기 위해?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질문과 부정은 계속됐지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99년쯤이었다. 그 즈음, 나는 내게 돈도 명예도 갖다 주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사회나 문학을 쇄신하는 사상이 담기지도 않을 게 분명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었다. 퇴근한 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써내려 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파스칼의 회심과 같은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는 문장에 해당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단숨에 깨달으면서 파스칼의 지복과 비슷한 감정을 잠시 느꼈단 말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때 바라본 밤하늘을, 그 때 느꼈던 따뜻한 고독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 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 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하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잘 살기 위해서다.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 산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 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 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영혼을 팔아치울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다면,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그 괴로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할 지경이었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완전히 던지는 일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나는 운명도, 운도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오직 내 몸과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인간이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 약력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3년 계간 '작가세계'에 시 '강화에 대하여' 등 5편 발표 등단 1995년 성균관대 영문과 졸업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중편 '사랑이라니, 선영아',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 빠이 이상' 등 작가세계문학상(1994) 동서문학상(2001) 동인문학상(2003) 등 수상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