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경영진들이 가슴에 새겨두고 있는 오랜 치욕이 하나 있습니다. 1950년에 있었던 대규모 구조조정이지요." 구조조정이 있은 지 27년 후 입사한 오기소 이치로(小木曾 一郞·49) 도요타 코리아 사장은 마치 당시 경영진인 것처럼 그 때의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도요타의 무분규 신화'가 오랜 시련의 산물임을 역설했다.1949년 도산 직전에 몰렸던 도요타는 은행이 구제조건으로 제시한 판매회사 분리독립과 대대적 인원감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노조는 극렬한 파업을 벌이며 반발했고, 결국 2대 사장이던 도요타 기이치로 사장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때 전사원의 25%가 정리해고 됐습니다. 그 후 60대 초반까지 파업이 계속됐습니다. 한번 무너진 노사간의 신뢰를 다시 구축하기 위해 10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지요."
그는 도요타 무분규 신화는 경영진이 그 때의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일본기업의 경영진은 종업원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을 최고의 의무로 생각합니다. 크고 작은 파업이 있을 때마다 도요타 경영진은 노조원들을 만나 회사가 이윤을 내지 못하면,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했습니다. 결국은 노조원 대다수가 파업이 이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자연스럽게 노조 내 강경파의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오기소 사장은 "노사관계는 두 바퀴 수레와 같다"며 "그 둘을 이어주는 축이 상호신뢰"라고 말했다. 그리고 상호신뢰는 무리한 요구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해야 만들어진다고 부연했다.
화제를 도요타 가문의 경영권 승계 비결로 돌렸다. 국내 대기업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편법을 동원하다 적지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1%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도요타 가문은 창업자의 4대 장손인 아키오(47) 전무에게 경영권 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오기소 사장은 "도요타 자동차 내에 도요타 가문에게만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룰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도요타 가문이라도 사내·외에 경영능력이 입증돼야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요타 가문이기 때문에 이사까지는 빠르게 승진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승진은 본인이 능력과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오기소 사장은 "아키오 전무는 GM과의 합작협상, 중국시장 진출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며 "개인적으로 아키오 전무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데, 직책은 부하지만 연상인 내게 선배대우를 해주는 등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아 사내에서 신망도 높다"고 전했다.
후계자의 활동을 철저히 비밀로 취급하면서, 경영능력보다는 지분확보를 통해 경영권을 계승하려는 국내 대기업들의 폐쇄적인 모습과 대조적이다. 오기소 사장은 2월 한국에 취임한 뒤 한달 만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말로 연설을 해 화제가 됐다. 한국생활 10개월째지만 신문 제목 정도는 읽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그는 "지난달 21일 한국어 검정시험을 치렀는데, 학원에서 배우지 않은 문제가 많이 나와 무척 애를 먹었다"며 웃는다. 오기소 사장은 한국생활에 대해 "풍경과 사람들의 외모, 음식은 일본과 많이 비슷하지만, 사람들의 개성은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일본인은 화(和)를 중요시하며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노력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본인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라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차이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다"며 "이런 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한국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밝혔다.
한국 상륙 3년 만에 수입차 시장 점유율 20%에 육박하며 무서운 기세로 한국시장을 파고 들고 있는 렉서스의 성공은 한국과 일본의 비슷한 문화에 한국을 연구하는 진지한 자세가 합쳐져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소 사장은 한국에서 렉서스가 인기를 끄는 비결에 대해 "자동차의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이며, 특히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차'라는 명성이 한국인들의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고급 세단 LS430의 경우 미국보다 한국에 먼저 출시할 만큼 도요타는 한국시장을 중시하고 있으며, '3S'(판매·Sales, 정비·Service, 부품조달·Spare Parts)가 한곳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도요타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 오기소 사장은 누구
▲ 1954년 일본 나고야 출생
▲ 1977년 게이오대학 경제학과 졸업
▲ 1977년 도요타 입사, 북미지역 상용차 마케팅 담당
▲ 1992년 도요타 본사, 북미지역 마케팅 담당 매니저
▲ 2001년 도요타 본사, 프로젝트 부장
▲ 2003년 도요타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 부인 오기소 카오루코씨와 애견 3마리
● 도요타코리아 어떤회사
2001년 도요타가 렉서스 브랜드를 앞세워 한국에 진출했을 때 업계에서는 성공 가능성을 반신반의했다. 경쟁상대인 벤츠와 BMW가 이미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렉서스가 기존 시장을 빼앗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강했다. 일본 메이커에 대한 한국소비자들의 선입관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였다. 하지만 출시 첫 해에 841대를 판매해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 10.9%를 달성하며 단번에 수입차 업체 중 판매 4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그 해 12월에 출시된 렉서스 ES300은 4,000만원대 가격을 무기로 베스트셀러 모델로 자리잡았다.
2002년에는 2,968대를 판매, 벤츠를 제치고 수입차 업계 2위에 올라섰다. 이는 전년대비 판매량이 350%나 증가한 것으로 도요타 본사의 기대를 넘어선 것이다.
한국에 상륙한 지 3년째를 맞으면서 도요타코리아는 도요타 학술지원기금 청소년 해외연수 프로그램 도요타 암연구기금 설립 등 다양한 공익사업을 통해 이윤을 한국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한국사회에 대한 기업책임을 다하고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문화적 브랜드로서 인정 받겠다는 것이다.
도요타코리아는 올해 렉서스를 3,150대 판매해 수입차 시장에서 20% 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3월 출시된 레저용차량(SUV) RX330과 부동의 베스트셀러 ES300 등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9월말 현재 2,324대를 판매해 목표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나의 취미/클래식음악 듣고 애완견 기르며 삶의 즐거움 느껴
여가가 있으면 주로 애견들과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는 아내와 콜리종 두 마리, 영화 '마스크'에 출연했던 자크라셀종 한 마리 등 자식 같은 애견 세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애완동물이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성원은 모두 소중하고 큰 의미를 갖듯이 애견들은 내게 아들, 딸처럼 늘 기쁨과 위안을 준다. 또 기르고 가르치고 먹이는 일의 어려움도 자식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듯 싶다. 지나치게 애정을 쏟아 부어도, 너무 엄하게 다뤄도 안되기 때문이다. 애완견은 199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근무할 때부터 기르기 시작했는데, 첫째는 남아프리카, 둘째는 일본, 셋째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우리 가족은 국제 가족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운 영향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특히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를 반복해서 듣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행복해 하곤 한다.
한국에 부임한 후 한·일 외교관계 역사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러나 책은 어디까지나 책일 뿐이고 한국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어 배우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어는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는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인사말 정도와 간단한 연설이 가능한 정도다.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다. 거리도 가깝고 오랜 교류 때문인지 친숙한 느낌이다. 음식이 다양하고 맛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갈비, 불고기, 설렁탕, 한정식 등을 좋아하고, 김치나 김 등은 선물로 애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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