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정치를 보면 '롤러코스터 정치'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한번쯤 재미 삼아 타보게 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면 정말 아찔하다. 게다가 요즘 롤러코스터는 옛날 88열차와는 달리 정신을 거의 빼놓다시피 한다. SK 비자금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사건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최도술씨 수수 사건으로 재신임 정국을 불러오더니,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롤러코스터처럼 정치권 전반이 춤추고 있다.이 와중에 한나라당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대응은 납득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SK로부터 단돈 1원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하다 급기야는 10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백하더니,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 대해서 압력을 행사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다 이제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SK 비자금 사건에 대한 특검제 실시'를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운데 특히 당혹스런 것은 무제한 특검제를 요청했다는 점이다. 수사가 무리없이 진행 중인데도 특검제를 주장하는 것은 마치 피의자가 직접 수사내용과 방법을 정하겠다는 것으로 비쳐진다. 게다가 대통령 측근과 상대 정당의 대선자금 의혹에 편승해 자신의 책임을 덜어보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기반성을 우선해야 할 사건에 대해 책임을 회피 내지 모면해 보려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공당의 자세라 할 수 없으며, 현재 우리 국민들의 최대 염원인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물론 한나라당 비자금 내막이 밝혀진다고 해서 대통령 측근과 상대 정당의 의혹이 가려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명백히 밝혀져야 할 사안임은 물론이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미진할 때 발동하는 특검제를 한나라당이 정치적인 국면전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해결은 원칙에 입각한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검찰에 맡겨두는 게 바람직하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특검제는 검찰 수사에서 미흡한 점들이 있을 때 검토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소신대로 수사하고 있는데도 특검제를 주장하는 것은 검찰에 대한 공연한 불신과 압력으로 보일 수 있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정치권이 무리한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고비용 정치구조로 인한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조성에 있다. 불법 정치자금이 우리 정치에 미치는 악영향이 임계점을 지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어쩌면 이번이 정치자금을 포함한 정치개혁 전반을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정치개혁의 일대 전기로 삼아야 하며, 정치자금뿐만 아니라 선거와 정당을 포함해 정치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치권이 명심해야 할 것은 이번 사건이 과거처럼 일회적인 사건으로 흐지부지 넘어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정치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간명하다. 정치야말로 충돌하는 다양한 이익을 조정하고 전체 사회발전의 방향을 조타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나머지 영역들은 이미 21세기에 진입해 있는데도 이를 조정해야 할 정치는 정작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것도 낡은 정치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정치가 되풀이되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롤러코스터처럼 현기증나는 정치가 아니라 깨끗한 정치, 믿음을 주는 정치다. 정치의 본질은 정당성에 있으며, 이 정당성은 무엇보다 투명성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부디 이번 사건이 '청정(淸淨)정치'로 나가는 정치개혁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 호 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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