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는 한 분 당 한 장씩 밖에 못드려요. 차례대로 줄을 서세요."28일 오후1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도양홀 입구. 이력서를 먼저 받기 위해 수 십 명의 노인들이 달려들자 행사진행 요원들이 진땀을 흘리며 애를 먹었다.
이날부터 이틀간 서울시가 주최하는 '2003 실버취업박람회'에는 이른 아침부터 55세 이상 중장년 구직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공식 개막식은 오전 10시30분이었지만 오전8시부터 행사장 앞은 재취업을 하려는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362개 업종의 19개 업체가 참여한 이번 박람회는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로 3,968개의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당초 주최측은 이틀동안 2만5,000여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취업에 대한 참가자들의 열기는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행사 진행요원 엄태순(48·여)씨는 "대필을 부탁하는 어르신들이 끊이지 않아 숨돌릴 틈이 없을 지경"이라며 "오전 9시 45분 개장한 후 불과 2시간 만에 만장의 이력서가 동이 났다"고 말했다.
구직을 위해 찾은 수천명의 참가자들은 점심 시간도 잊은 채 채용광고가 붙은 대형 게시판 앞에서 필요한 정보를 꼼꼼이 적거나 깨알 같은 글씨로 이력서를 쓰느라 진땀을 흘렸다. 또 부스를 돌아다니며 상담원에게 궁금한 점을 묻거나 옆 사람과 필요한 정보를 서로 나누느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경비일을 찾는다는 전옥남(60)씨는 "출퇴근 거리와 보수 등을 충분히 생각해보고 이력서를 내볼 생각"이라며 "업체수는 많은데 적당한 조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박람회는 단순 일용직 뿐 아니라 정보기술업종, 외국인 기업, 전문번역직 등 고급인력을 채용하는 업체들도 부스를 마련해 열기를 더했다. 전직 교수, 대기업 임원, 행정부처 간부 등 지원자들의 경력도 화려하다. 정보통신업체에 근무했던 심재길(63)씨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중장년층들이 젊은 세대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진단했다.
실버취업박람회 박준기 사무국장은 "노인들에게 일자리는 자존심이자 생명"이라며 "이번 박람회가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소외감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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