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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예심 후보작 6편 선정/"문단의 세대교체·프로화 엿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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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예심 후보작 6편 선정/"문단의 세대교체·프로화 엿보여"

입력
2003.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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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이 젊어졌다. 프로화했다. 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심사를 맡은 심사 위원들은 "한국 문단의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는 데 입을 모았다. 예심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평론가 서경석(한양대 교수) 이광호(서울예대 교수) 신수정씨는 24일 한국일보사 5층 회의실에서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을 선정하는 모임을 가졌다. 2002년 10월부터 2003년 9월까지 국내 15개 월간·계간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과 단행본으로 발표된 장편소설이 심사대상이 됐다. 2시간 여에 걸친 토론 끝에 김경욱 김연수 강영숙 천운영씨가 발표한 단편소설 4편과 배수아 김영하씨가 펴낸 장편소설 2편이 뽑혔다.문단의 중심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젊은 작가들

후보작 모두 1990년 이후 등단한 30대 작가의 작품이다. 서경석씨는 "방금 전만 해도 '신인'이었던 사람들이 2000년대 문학의 큰 줄기가 된 게 아닌가"라며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고 선언할 만하다, 희망적이다"고 말했다. 틀과 도식, 대세 같은 기성의 안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감성이 돋보이며, 세계를 새롭게 보고 새롭게 살아가려는 시대 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수정씨도 2000년대 들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적 움직임 대신 문학적 자율성이 당당하게 발휘된다는 데 동의했다. "1990년대 작가들은 80년대 문학에 대한 의식적 대결을 벌여야 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심사를 통해 드러난 새 작가군은 그러나 '앞선 것'에 대한 자의식이 없어졌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신수정씨는 특히 우리 문단의 '회전율'이 빨라졌다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시간이 짧아졌다, 한국 문단이 프로화·전문화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광호씨는 이에 대해 "연령적으로 젊어진 것은 맞지만 90년대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도 적지 않다"며 "더 많은 물갈이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90년대 소설이 오로지 개인의 내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면 최근에는 정치와 권력, 공동체 등 개인이 관계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진다"며 "90년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감수성이 엿보이긴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제도와 평단이 '전위'를 발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작 6편이 선정되기까지

김경욱씨의 단편 '고양이의 사생활'과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논의에 올랐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김경욱씨의 '감각적 글쓰기' 작업과는 구별되는 작품으로 소설 세계의 변모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그러나 '고양이의 사생활'이 '김경욱답다'는 점에서 후보작으로 걸러졌다. '고양이'로 대변되는 소녀들에 대한 화자의 입장이 기성 세대가 아닌 신세대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감성이 돋보였다.

김연수씨의 소설 중 중편 '사랑이라니, 선영아'와 단편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이 논의됐다.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매우 잘 읽히는 흥미로운 소설이며,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은 작가만의 소설 세계를 확고하게 자리잡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됐다.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이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공부하는 작가'로서의 김연수씨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강영숙씨의 단편 '씨티투어버스'는 그로테스크한 환상을 통해 현실적 문제를 인식하도록 하는 작가의 특기가 잘 발휘된 소설이라는 데 관심이 쏠렸다. 도시의 근대적 생활이 부여하는 소외와 고독, 좌절감 등을 SF적 분위기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 이 작품이 추천됐다.

천운영씨의 단편 '멍게 뒷맛'과 '명랑'은 모두 독특한 상징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꼽혔다. 지금까지의 소설에서 다루지 않았던 감각이나 사물을 형상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이 신예 작가의 장기는 '멍게 뒷맛'에서 좀더 강렬한 것으로 평가됐다. 한 여성의 특이한 성품을 멍게 뒷맛이라는 감각적 화두로 풀어낸 단편 '멍게 뒷맛'이 후보작으로 뽑혔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 배수아씨의 장편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도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빈곤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 작품이 상상력의 한 극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후보로 추천됐다. 한편으로 지금껏 '제도로서의 문학'이 포용하기 어려웠던, 배수아씨 소설로 대변되는 새로운 문학적 경향을 인정하려는 의지가 담겼다고 심사위원들은 밝혔다. 김영하씨의 장편소설 '검은 꽃'과 단편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함께 논의됐다. 심사위원들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제시된, 그늘이 없는 '쿨하고 심플한' 인간형이 작가의 문학적 입장을 재치 있게 밝혔다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검은 꽃'이 장편으로서의 중량감과 주제 의식의 무게를 갖춘 야심적 작품으로 평가돼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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