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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폐교 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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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폐교 예술제

입력
2003.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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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숭례문 옆의 남대문 초등학교는 1979년에 문을 닫았다. 상업 건물이 주택을 잠식하면서 학생수가 줄어든 탓이다. 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편입되었고, 졸업생들은 졸지에 모교를 잃었다. 졸업생들은 근년 들어 '남산 고향길 걷기' 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매년 현충일에 모교가 있던 자리를 보며 남산길을 순례하는 것이다. '삭막한 대도시'에서 자란 줄만 알았던 서울내기들의 모교에 대한 향수(鄕愁)가 눈물겹다. 지난번에도 졸업생과 가족 등 500여명이 모여 정을 나누었다.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은 50대라고 한다. 그들이 다니던 1950∼60년대는 학생수가 넘쳐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20년 후 폐교에 이르렀으니 변화가 덧없다.■ 이 졸업생들은 '남산 고향길'이라도 걸을 수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학교의 흔적도, 상실의 추억이나마 나눌 선후배도 없어진 도시 출신도 많다. 시골에서는 초등학교 폐교가 80년대 이농현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분교들이 먼저 없어지고, 오지 학교가 뒤를 이었다. 지금은 지역 교육청마다 폐교 활용에 열심이다. 인터넷에는 '폐교재산의 매입·임대를 원하는 분을 친절히 안내해 드린다'는 광고도 많이 올라 있다. 환경오염 시설이나 주민정서에 맞지 않는 시설 외의 건전한 용도이면 이용이 가능하다.

■ 농촌 폐교의 쓰임은 다양하다. 약초재배나 버섯채취, 조류사육 같은 농업시설로 많이 활용되고 있고 기공무술, 건강관리 등 면민 체육시설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레크리에이션 공간과 참선수련장 등 레저를 위한 장소로도 사랑 받고 있다. 경비행기 제조장으로 이용되던 남원의 한 폐교는 드문 경우지만, 백령도 벽지에서는 검소한 숙박시설로도 바뀌었다. TV 이외의 문화에서 소외된 오지 폐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경우가 문화시설로 쓰이는 것이다. 특히 화가·조각가의 작업장으로 쓰이는 경우가 그러하다.

■ 폐교를 이용한 '오궁리 미술촌'이 전북 임실군 신덕면에 문을 연 것이 95년이다. 화가와 조각가, 사진작가 등 미술인 일곱 가족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그동안 다섯 아이가 태어나 예술 분위기를 호흡하며 자라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다음 달 3일까지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각지의 '노란 항아리'(강원) '가인예술촌'(경상) '서해미술관'(충청) 등이 참여한 '제1회 전국 문닫은 학교 연합예술제'가 그것이다. 폐교의 쓸쓸함 위에서 동심과 더불어 문화가 자라고 있다. 우리의 독특한 폐교 문화가 더 본격적으로 꽃 피기를 기대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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