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변신에 대해 우회적 비판을 하셨는데…> 라고 이메일은 시작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방미 후 쓴 글에 대해 독자가 보낸 편지였다. <어떤 생각 없는 여인네는 대통령을 마치 제 아들 다루듯 했고, 무슨 대학교수도 비슷한 깎아내림을 했습니다. 절제된 비판과 견제, 채찍질은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모두 도를 넘어서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걱정도 안되나 봅니다…> 신경질적인 긴 편지의 끝은 <우리를 위한 우리 대통령입니다. 대통령하고 무슨 원한 지셨습니까?> 라고 묻고 있었다.재신임 정국의 훤소 속에 편지를 떠올린다. '걱정' 과 '원한' 이라는 감정적 어투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까닭이다. '재신임'은 나라에 한 바탕 해프닝을 몰고 왔다. 충격과 반전, 재반전이 거듭된 소극(笑劇)을 거치며 대통령과 여·야당, 언론사의 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출된 풍경은 황폐했다. 우리를> 어떤>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에 즉각 찬성의사를 표명했던 일부 정당과 언론사는 여론조사가 대부분 '재신임 지지 우세'로 나타나자, 재빨리 입장을 반대로 바꾸었다. 반대하던 사실상의 여당 또한 유리하다고 판단하자, 국민투표 지지로 깃발을 바꿔 들었다. 공수(攻守) 가 바뀐 가운데, 각 정당과 언론사는 변신을 합리화하는 장황한 논리를 내놓고 있다.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연상시킬 만큼 정치·언론문화가 부박하다.
재신임 논쟁도 열기를 잃고 잦아드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냉철하게 성찰하지 않으면, 쓰라린 정치환멸과 냉소주의만 남게 될 것이다. 미스터리는 막상 여론조사를 해보니 낮은 대통령 지지도와 달리, '재신임 하겠다'는 견해가 우세했던 결과의 불일치였다.
이 수수께끼 앞에서 '침묵의 나선(螺線)이론' 이라는 다소 낯선 언론학 이론을 떠올려 본다. 어떤 문제에 찬반이 분분하다가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여론형성 과정을 밝히려는 이론이다. 언론이 어떤 견해를 강하게 내세우면, 반대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는 사람 수가 나선형처럼 늘어난다는 것이다. 개인이 의사표시에서 '왕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언론의 여론조작이 가능하다.
일부 언론의 정부불신 조장과 '걱정도 안되나 봅니다' 라는 호소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었다. 그 갭을 좁혀 준 것이 여론조사다. 여론조사가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대중은 일부 언론이 과장한 반(反)노무현 정서에 끌려 다니다가, 결정적 시기에는 자기판단에 충실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론과 거대 야당이 말 뒤집기를 계속하고 있으나, 재신임 여론은 더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있지만, 불신임 받을 정도는 아닌 탓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민의 비판적 지지가 우세하다는 것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함부로 여론조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감지된다. 침묵하는 다수는 현 정부의 개혁의지를 지지하는 셈이다. 따라서 재신임 투표를 강행할 필요도 없다. 이미 답이 제시되고 있는데, 낭비적 행사를 치를 이유가 없다.
결국 정당과 언론은 대중보다 사려 깊지 못했다. 재신임 소란 속에 더 큰 혼란을 부채질한 정당과 언론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일관성 없는 주장과 논조 바꾸기는 계속되고 있다. 성숙한 자세로 국론의 균형을 대신 잡아준 대중 앞에서 정직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대통령 역시 좀더 정직하고 사려 깊은 지도자가 돼야 한다.
대통령은 재신임 정국이 측근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사태를 분명하게 결말 지어야 한다. 재신임 투표가 아니더라도 사태를 명료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면, 정치환멸을 키우고 자신을 믿어준 국민의 애국심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두 번 다시 '재신임 투표' 라는 비장의 카드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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