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단풍이 절정을 이뤘다. 많은 국민들이 단풍놀이를 즐긴 주말에 단풍놀이는커녕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모인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한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 이 달 들어서만, 노동탄압에 저항해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자살을 했고 세원테크 노조위원장이 분신을 한데 이어 벌써 세번째다. 자연은 단풍처럼 아름다운데 우리의 삶은 왜 이다지도 불공평하고 처절한 것인가.아무튼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들도 단풍구경을 젖혀 놓고 주말회동을 가졌다. 회동은 예상대로 대선자금과 재신임 문제에 대해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비극과 희극은 통한다고 하지만, 이번 회동을 바라보면서 정말 한편의 코미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김종필 자민련총재와 박상천 민주당대표가 특히 대선자금의 고해 및 사면 방안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그간의 행적을 보아, 정치자금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두 당이 이 같은 입장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자민련은 군소정당으로 지난 대선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했고, 민주당 역시 그 중심세력이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밀지 않아 대선자금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2000년 총선자금까지로 확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지난 7월 정대철 전 민주당대표의 물귀신 작전과 같은 발언으로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가 떠올랐을 때, 노 대통령은 여야가 모두 대선자금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미 선관위에 다 신고했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SK 비자금이 한나라당의 대선자금문제로 발전하자 허겁지겁 특검에 의한 여야자금의 전면수사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또 다른 코미디이다.
이번 회동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코미디의 압권이라고 느낀 부분은, 노 대통령의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에 대해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결단"이라며 지지를 표명하자 노 대통령이 "힘이 난다"고 회답했다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개혁세력이 대규모 주말집회를 열어 파병결정을 비판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이념적으로 전혀 입장이 다른 김 총재는 노 대통령을 오히려 칭찬하고 노 대통령 역시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힘이 난다고 하니, 이런 엽기코미디가 따로 없다.
현재 대선자금문제는 한나라당이 특검법을 제출키로해 한나라당의 특검론과 노 대통령의 검찰수사론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특검이냐, 검찰이냐는 수사주체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단순한 SK비자금문제를 넘어서 대선자금, 나아가 2000년 총선자금에 대한 총체적인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다. 과연 SK만 불법 정치자금을 줬겠는가. 결국 총체적 실체규명을 통해 정치자금에 관한 한 "어느 쪽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나 큰 차이는 있을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니면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별 차이가 없는데 SK사건이 한나라당이 훨씬 부패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는 것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여하튼 SK가 준 돈은 노 대통령측에 25억원, 한나라당에 100억원이니, SK에 관한 한 그 차이는 2.5대 10이다.
2000년 총선자금에 대해서도 조사해 일부 정치권이 단지 대선후보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깨끗한 척 코미디를 연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다만 그동안 검찰이 특정하게 문제가 터져 나오지 않은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조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온 것이 걸림돌이다. 검찰이 현 단계에서도 그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경우 불가피하게 이번 사안은 특검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검찰이 입장을 바꾼다면 최근 검찰의 수사태도를 볼 때 검찰을 한번 믿어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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