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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생명 풀무꾼 원경선 <32> 기아대책기구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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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생명 풀무꾼 원경선 <32> 기아대책기구를 시작하다

입력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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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의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쌀겨로 쑨 죽이나마 실컷 먹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나는 어린시절에 쓰라린 굶주림을 겪었다. 보통학교를 마치고도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는 농사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과거의 배고픈 경험은 부천에서 풀무원공동체를 열고 가난구제를 시작한 큰 동력이 됐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기아문제를 체계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불러 먹을 것을 나눠주고 바른 생활을 인도한 것뿐이다. 굶주림과 기아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행동까지 결심한 것은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부터다.

국제기아대책기구의 실상과 활동은 88년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알게 됐다. 미국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교회 일로 일본을 들렀는데 그곳에서 국제기아대책과 관련한 모금행사를 하고 있었다. 모금을 독려하는 목사가 나와서 "매 2초마다 지구상에서 한명씩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들려주는 참상은 충격적이었다. 이미 전에도 전세계 인구 50억 명(당시에는 그 정도였다) 가운데 10억 명이 굶주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귀국 직후 '우리도 국제기아대책기구를 만들어 세계적인 봉사에 동참하자'고 결심한 나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이 즈음 가난구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일본에서 간행된 '소비에트 제국의 붕괴'라는 책은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었다. 책에서는 소련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국영·집단농장보다 사영농장이 더 생산성이 높아 전체 면적의 1%에 불과한 사영농장에서 전체 소득의 27%가 생산되고 있는 사실을 적고있었다. 고급농작물은 압도적이어서 계란은 전체 생산량의 47%, 우유와 식육은 34%가 사영농장에서 나왔다.

책을 보고 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개인주의적 이기심 때문에 가난구제에 나설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자본주의에서는 축적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욕망 때문에 내놓질 않고 사회주의는 공동분배의 좋은 이념에도 불구하고 실제 생산부터 차질을 빚고 있으니 어느 쪽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가난구제를 이념이나 체제에 호소할 일이 아니고 먼저 개인주의를 뿌리뽑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연이나 설교 때마다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기아문제로 방송에 출연할 일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부자는 지옥을 갈망정 돈은 내놓지 않을 것이다. 굶주린 이웃을 위해 비슷한 처지의 우리가 나서자"며 다소 과격한 발언을 하고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50억 가운데 10억이 굶주린다고 하니 4명이서 1명을 먹여 살리자는 제안이었다. 가령 하루 8시간 노동으로 한 달에 100만원을 번다면 2시간씩 일을 더해서 번 돈을 내놓자는 실현 불가능한 방법까지 마구 쏟아냈다.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나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걸 알고 당시에는 나도 적잖이 놀랐다.

기아대책을 위한 행동은 내가 관여하고 있는 3개 단체를 찾아 다니며 호소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한삶회공동체와 풀무원식품, 동신교회에 국제기아의 실상을 전하고 모금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남승우 풀무원 사장은 기꺼이 도와주겠다며 그 자리에서 흔쾌히 응낙했다. 이렇게 풀무원식품부터 본격적인 모금활동이 시작됐는데 특히 주부판매사원인 건강레이디들이 적극 참여했다.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수천명의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도 하고 기아관련 홍보에도 발을 벗고 나섰다. 처음 3년간은 국제기아대책기구 본부로부터 국제기구로 공식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십시일반 모은 돈은 일본을 통해 본부에 건네 세계 각국의 어려운 지역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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