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한국학과에 들어간 때가 1990년이니 이제 한국어를 공부한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잘 한다고 자부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한국어에는 외국인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묘한 감정 표현들이 많다.한국어 학당 시절 외국 학생들이 '시원하다'는 표현이 갖는 다양성에 대해 주고 받던 농담이 아직도 기억 난다.
우리는 모든 대답에 '시원합니다'라는 말을 사용했다. "수업이 끝났습니까?" "네, 시원합니다." "시험 문제가 어땠어요?" "답안지가 아주 시원합니다." "바람둥이 남자 친구는 요즘 어때요?" "네, 어제 교통사고를 당해 아주 시원하네요."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도, 뜨거운 국을 마신 뒤에도, 탁 트인 전망 앞에서도, 머리를 깎고 나서도 '시원하다' 라고 표현하니 외국 학생들에게는 뜻이 영 시원치 않은 말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사투리로 하자면, "거시기하다"고나 할까.
하나의 단어가 이렇게 수없이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어구들의 풍부함은 더욱 그렇다.
여자 친구가 "기분이 찌뿌드드한데 날씨도 꾸물꾸물하고 슬금슬금 비까지 내리니까 정말 눈물이 날 것만 같아"라고 하면 옆에 있던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그런 생각은 그만 탁 털어버리고 우리 술이나 한 잔 착 걸치면서 기분 확 풀어 버리자. 아니면 어디로 바람이나 휙 쐬러 갈까?" 이 '탁' '착' '확' '휙' 같은 단음절의 어휘는 사람들의 기분을 표현하는 데 그만이다.
나도 요즘은 이런 표현들을 잘 쓰는데, 가령 이렇다. "기사 아저씨, 이 길로 쭈욱 가시면 되는데요, 그렇게 브레이크 좀 콱콱 밟지 마세요."
한국어는 그만큼 감정 표현이 발달되어 있는 언어다. 하지만 때로는 이 미묘한 언어 사용이 외국인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극히 세분화한 한국어의 경어체계는 미묘한 상황에서 한마디만으로도 상대의 감정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데 특히 반말이 그렇다. 이 '반 토막' 짜리 말들은 한국에서 오래 지낸 외국인들의 기분을 '확' 상하게 한다.
외국인들은 모르리라 생각하고 대화 틈틈이 '어이, 이봐, 뭐, 그래' 등의 말을 끼워 넣는 것은 이방인을 무시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 말들은 외국인들이 뒤돌아섰을 때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술탄 훼라 아크프나르 터키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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