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돈을 추구하고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 싶어하는 소비 욕망은 인간을 파탄으로 치닫게 한다. 카드빚 수렁에서 빠지기도 하고, 가정 파탄의 위기에 내몰기도 한다. 특히 여성 중에는 쇼핑광이 많다. 전문가들은 쇼핑중독자 10명 가운데 9명은 여성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통신판매업체 관계자들은 "특히 여성 소비자들은 충동구매가 많다"고 지적한다. A홈쇼핑의 경우 여성들이 주로 구입하는 의류나 속옷 보석류의 반품율은 무려 40∼50%에 이른다. 평균 반품율 20%내외에 비하면 거의 배가 넘는 수치다. 인간 누구나 '구매충동'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구매광들의 '충동구매'는 양상이 다르다. 하루종일 TV나 인터넷 홈쇼핑을 보면서 앞뒤 생각 없이 물건을 구입하는 여성 중에는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구매 행동 자체에 따르는 흥분 때문에 쇼핑에 몰두하는 일이 많다.쇼핑중독의 기준
정신과 의사들은 얼마 전부터 쇼핑중독을 단순한 과소비 차원이 아니라 알코올중독이나 다식증 같은 정신질환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조두영 서울대명예교수(조두영 신경정신과 원장)은 "아무리 많이 구입했다 해도 갚을 능력이 있을 때는 쇼핑중독에 빠졌다 할 수 없다. 사들이기로 인해 본인이 고통받고 빚지고 집안이 망하게 될 때라야 비로소 구매광이라는 진단명이 붙여진다"고 말했다.
소유 목적에서가 아니라, 불안과 긴장을 줄일 목적에서 쇼핑중독자들은 물건을 사들인다. 충동이 발동했는데도 불구, 여러가지 이유로 구매가 불가능할 때 중독자들은 심리적으로 동요하고 짜증스러워한다. 구매 충동은 보통 수일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데, 보통 1시간 정도 지속되며 이때는 슬픔 고독감 분노 좌절 짜증으로 괴로워서 애써 충동을 누르려 하지만 결국지고 만다. 구매 직전의 긴장감은 구매 후 후련함으로 바뀐다. 구매 순간 강한 행복감과 희열감을 느꼈다는 반응이 많지만, 일부 여성들은 우울 짜증 절망 분노 죄책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쇼핑중독자의 7분의 1가량은 성적 흥분까지 느낀다.
서울대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쇼핑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쇼핑을 통해 내부에 뿌리깊은 허무감 갈등 등을 외부에서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왜 쇼핑중독이 발생하나
쇼핑중독은 여느 정신장애와 마찬가지로 유전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과 가족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정신과 의사들은 최근 이를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쇼핑을 하는 데서 오는 흥분과 설레임으로 인체 내 도파민과 세포토닌의 분비가 자극되고 이로 인해 일시적인 행복감에 젖기 때문에 쇼핑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남성들은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분비로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쇼핑 충동을 잘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권교수는 쇼핑중독을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진단한다. "쇼핑이라는 행동을 중단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한다면 이는 강박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강박증상은 불쾌한 생각을 없애기 위해 반복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쇼핑중독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쇼핑강도와 지출을 늘리지 않으면 고조된 기분을 맛보기가 점점 힘들어, 결국 경제적 파산을 초래한다. 조두영 명예교수는 뒷걱정보다는 당장의 욕구 충족, 행위에 앞서 고조되는 긴장감, 구매 직후의 후련함, 다시 찾아오는 충동, 권태와 무료함에 길들여짐, 중독 초기의 희열감 등 진행 양상이 알코올이나 마약, 도박 중독자와 흡사하다고 말한다.
우울증의 일종으로 쇼핑중독을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 우울증으로 진료받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쇼핑중독 증세를 보이지만, 쇼핑 중독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쇼핑중독자들의 충동구매는 슬프거나 외로울 때 혹은 화가 날 때, 좌절감을 느낄 때 많이 발생한다.
외모로 평가하는 사회문화가 여성의 쇼핑중독을 일으킨다는 분석도 있다.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 자신을 남들보다 돋보이게 하려는 여성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미네소타대가 병원 입원치료를 필요로 했던 심각한 쇼핑중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주로 사는 물건은 맵시와 관계된 옷, 신발, 보석류 들이었다. 또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백화점이나 상점에 접근할 시간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성들은 여유시간이 생기면 주로 술을 마시듯, 여성들은 시간이 나면 백화점이나 상점으로 달려간다.
한편 쇼핑중독에 빠지는 여성집단은 가구당 수입이 평균치보다 2배나 많은 부유한 가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족들은 충동적이고 과도한 구매행위를 잘 참아내는 경향을 보인다.
쇼핑중독 어떻게 극복할까
구매광 조짐은 17∼18세에 보이기 시작, 평균 29세가 되면 본인도 문제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빚, 친지의 충고, 쌓아둘 창고가 부족해져서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고, 가정파탄을 일으켜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쇼핑으로 소요되는 시간 때문에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한다.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조사에 따르면 쇼핑중독자들은 자신감과 자기애가 부족하며 매우 의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쇼핑중독에 벗어나도록 교육프로그램이나 자원봉사 또는 시민 활동에 참여하도록 해, 긍정적인 사고를 주위사람들과 교환하는 것을 치료의 첫걸음으로 제시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쇼핑으로 자신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항우울제 투여 등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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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박장애 종류
여성들은 보통 쇼핑중독 외에 신체이형장애(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 병적도벽이 많고, 남자는 병적도박, 방화광, 건강염려증 증세를 보이는 강박관련장애 환자가 많다. 신체이형장애란 자신의 외모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지나치게 집착, 결점을 감추려 하는 행동이다. 예를들면 매부리코, 붉은 얼굴 등 얼굴의 단점에 집착, 계속 거울로 이를 확인하는 행동이다. 신체이형장애 환자들은 자신감의 결여로 우울증 인경장애 충동조절 장애 등을 같이 가지는 경우가 많다.
돈이나 물건에 욕심이 나지도 않으면서 자잘한 물건들을 병적으로 슬쩍 훔치는 고약한 여성들도 꽤 있다. 이런 도광(盜狂)들은 기분장애 식사장애 불안 장애를 함께 앓는 경우가 많다. 도광의 특징은 치밀한 사전계획 없이 일을 벌인다는 점에서 범죄적 절도 행위와 다르다. 병적 도벽을 가진 여성들은 훔치지 않고는 긴장과 불안감이 엄습해 못배긴다. 번번이 충동에 굴복하고 이런 행동을 벌이지만, 훔친 뒤에는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곧 깨닫고 죄책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강박관련장애는 사춘기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30대 중반의 미모의 여성 J씨가 병원을 찾게 된 것은 주체할 수 없이 매일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월급에 비해 과다하게 소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하루라도 백화점을 가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주로 자신의 옷이나, 화장품, 신발, 각종 악세서리 등 실제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사기 위해서 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떤 경우는 포장을 풀지도 않은 물건들이 쌓이는 데도, J씨의 쇼핑행각은 멈추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차 케이블 TV나 인터넷 쇼핑에서도 매일 물건을 신청하게 됐다. 케이블 TV에서 전화 신청을 마감하는 남은 자막시간이 변하는 것을 보면, 마치 자신의 심장이 곧 멎을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다시는 그 물건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곤 했다. 벌써 몇 달째 카드 대금만 수백만원씩 청구됐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오게 된 J씨를 면담해보니, 그는 반복적으로 우울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슬프고 화가 나거나,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 물건을 구입하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약물치료와 면담을 통해 다소 호전을 보였지만, 여전히 혼자있는 시간이면 물건을 사고 싶은 충동을 참기가 어려운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내부에 뿌리 깊은 허무감이 있고, 자신의 갈등을 물건을 사는 행동으로 무의식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적 이미지의 결핍에 대한 보상으로 외적인 것에 집착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알코올중독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에서도 이를 고려하여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쇼핑행위만을 바꾸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자세없이는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권준수 서울대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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