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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고해성사, 또 다른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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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고해성사, 또 다른 거짓말

입력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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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고해성사'를 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각 당이 지난 대선자금으로 누구에게 얼마를 받아 어떻게 썼는지 밝히자는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도 정치자금에 관해 밝힐 것이 있으면 일제히 고백하자는 것이다.고해성사란 신에게 하는 것이지만, 정치권에서 하겠다는 고백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국민으로서는 골치 아픈 부담을 또 하나 지게 될 모양이다. 골치가 아파도 실속이나 있으면 참겠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번 고해성사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기업비자금과 정치자금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치자금에 관한 철저한 조사, 고해성사, 대사면, 제도개혁 등의 절차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벌써 문제점이 다 드러나 있다.

우선 고해성사를 했다고 치자. 고백한 내용은 다 사면해 줄 셈인가. 사면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생각인가. 고백이 사실인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건들이 드러나면 고백 안 한 것들만 처벌할 건가.

고해성사의 시한은 어떻게 정할 건가. 그 기간 중에만 깨끗했다면 과거는 문제 삼지 않나. 또 고해성사를 거부하는 당이나 개인은 앞으로 불법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처벌해야 할 텐데, 고백으로 사면 받은 경우와의 형평성에 시비가 없을까.

문제점들을 열거하다 보니 코미디 각본을 쓰는 기분이다. 오죽하면 고해성사 안이 나왔을까 그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고해성사는 시끄럽기만 할 뿐 거짓말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혹시 정직한 고백이 있더라도 옥석을 가리기 어렵고 국민이 믿지 않을 것이다.

고해성사는 안 하는 게 낫다. 대신 정치개혁 입법을 서두르고 그 법을 철저하게 지키면 된다. 그 동안 각 당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법 개정을 주장하다가 슬그머니 침묵하곤 했는데,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법을 바꿔 봤자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지켜지기 어렵고, 지키는 사람만 손해 본다는 우려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들 사정만 생각하지 말고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때 SK에서 10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요즘 정국이 시끄러운데, 그것이 한나라당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액수가 문제지 안 걸릴 정당이 없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겠다는 탄식이 온 나라에 가득하다. 기업들이 정치자금으로 수백억씩 뜯기고 운 나쁘면 감옥까지 가야 하니 어떻게 정상적인 기업경영을 기대하겠는가.

그 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불법 정치자금을 주지 않겠다고 여러 번 선언했다. 지난해에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자금을 국고에서 부담하는 선거공영제를 확립하고, 중앙당 규모를 축소하는 등 저비용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전경련에서 나왔지만, 결국 정치자금의 덫에 걸린 기업들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개혁'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는데, 국민은 개혁이란 말에 식상한 지 오래다. 모든 대통령이 취임 초에는 개혁을 소리높이 외쳤지만 대부분 별 실적 없이 임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신이나 친인척 또는 측근들이 반개혁 사범으로 감옥에 가곤 했으니 개혁을 주장하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냉소를 이해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개혁을 외치는 대신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밀고 나가야 한다. 특히 정치개혁은 자신의 명운을 걸고 혁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인식을 바꾸려면 정치자금과 선거관련 불법행위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당선자의 대부분이 당선무효가 되고 감옥에 가더라도 강력한 처벌을 계속해 나가면 정치문화가 급속하게 달라질 것이다.

대통령 재신임이라는 부담만으로도 국민은 골치가 아픈데 다시 고해성사까지 들으라니 온 국민이 몸살로 앓아 누울 지경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공연히 변죽만 올리지 말고 핵심으로 가야 한다. 애국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수백억씩 기업의 등을 치는 날강도짓을 막아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정말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의식으로 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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