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소외론이 더 확산되고, 구주류가 신주류를 더 공격해야 한다. 호남 쪽이 흔들흔들해야 영남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다."지난 5월 현 통합신당(열린 우리당)의 신기남 의원이 한 말이다. 이게 신 의원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건 민주당 탈당파의 기본적이고 일관된 전략이었다. 탈당파의 그런 전략은 일단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덕분에 노무현 정권이 흔들흔들해졌고 급기야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까지 나오게 되었다.
통합신당은 노 정권의 위기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의 책임을 묻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민주당 분당을 막게끔 보좌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큰 죄를 저지른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건 유권자들이나 물을 수 있는 것이지, 탈당파가 그러는 건 영 어울리지 않는다.
탈당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지역구도 타파'만 해도 그렇다. '3김 정치'의 자연적 소멸은 다음 총선에서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지역구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주고 각 지역정당들이 자신들의 취약 지역에 성실한 공을 들이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었다. 호남인들은 영남 출신 대통령을 만들면서 그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노 정권이 개혁 드라이브만 제대로 걸어준다면 호남 내부의 기득권 세력도 이제 정책에 따라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정당을 찾아갈 가능성도 높아진 만큼 민주당의 호남 독식을 크게 우려할 일도 아니었다. 지역구도는 그런 식으로 서서히 완화시켜 갈 일이었다. 적어도 한 세대 이상 묵은 지역 구도를 하루 아침에 뒤집어 보겠다는 모험주의는 오히려 지역주의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 탈당파들은 무슨 귀신에 씌웠는지 '운동권 대학 1학년생'도 하지 않을 수준의 어이 없는 도박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도박이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통합신당의 지역구도 타파 전략은 한 지역의 다른 지역에 대한 반감과 혐오에 기대는, 최하질(最下質)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무슨 어이 없는 일을 저질렀는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첫째, 탈당 주도자들의 과도한 '인정 욕구'다. 이들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자기들이 직접 주도하는 정치판을 벌이고 싶었다. 자기들 살림 차리고 싶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판단이 흐려진 것이다.
둘째, 민주당 구주류의 후안무치다. 이들은 김대중 정권의 실망스러운 말로에 대해 전혀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은 채 민주당 개혁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탈당파의 구주류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다. 그러나 탈당파는 타당한 수준을 넘어섰다.
셋째, 탈당파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탓도 클 것이다. 이들의 탈당은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고 저지른 것이며, 청와대의 코드 인사로 인해 이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노 정권 엘리트 세력의 거의 대부분이 탈당에 대해 우호적이었다고 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민심과는 동떨어진 채 자기들끼리만의 환상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노 정권의 앞날을 전혀 낙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극단으로 치달은 '코드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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