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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둘 수 없는 영혼

입력
2003.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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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덴 갸초 지음, 정희재 옮김 꿈꾸는돌 발행·9,000원

티베트 사람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달라이 라마일 것이다.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자 공동체를 이끌면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우리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평화의 사도로 알려져 있다. 티베트는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점령됐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팔덴 갸초(70·사진)가 있다. 티베트 최장기수 정치범이었고, 고통받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을 유엔에서 증언한 최초의 티베트인이다. 한창 수행에 정진하던 스물 여덟 살에 그는 스승을 인도 스파이라고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체포됐다. 그리고 1992년 예순이 돼서야 풀려났다. 31년간의 감옥살이는 고문과 굶주림, 강제노역과 사상교육으로 점철된 지옥의 날들이었다. 석방된 뒤 바로 티베트를 탈출한 그는 지금 다람살라에 머물며 티베트 독립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 책은 팔덴 갸초의 자서전이자 국내 처음으로 티베트의 아픔과 현실을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티베트 여행과 불교 명상 붐을 타고 티베트 관련서는 숱하게 쏟아졌지만, 티베트를 신비의 나라로 그리거나 티베트 불교의 평화 사상을 전하는 것들이었다. 이 책에는 그가 몸으로 체험한 티베트 현대사의 비극이 선혈처럼 선명하다.

그는 승려가 되기 위해 처음 출가할 때의 평화로운 티베트의 모습부터 감옥에서 보고 겪었던 모든 일들, 그리고 마지막 탈출까지 자세히 서술했다. 달라이 라마의 권유로 썼다는 이 책은 매우 감동적이다. 최악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비와 인내를 실천하는 팔덴 갸초의 모습, 특히 고통을 주는 자들까지 용서하고 감싸 안으려는 자세는 더없이 숭고하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잘 보이기 위해 동족을 고발하고 고문하는 티베트인을 가여워 한다. 거기서 인간의 나약함과 이중성을 본다.

이 책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팔덴 갸초의 인간적 고뇌가 또렷하기 때문이다. 그는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는 승려이지만,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는 사형수 처형장에서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를 보면서 부디 독수리가 자기를 잡아채서 멀리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 장시간 수갑을 차는 바람에 마비되어 버린 팔을 풀려고 애쓰면서 다시는 손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짓눌리기도 한다. 끔찍한 전기고문을 당해 치아가 대부분 빠져버린 그에게 동료 수감자들이 "심하게 고문 당했냐"고 물었을 때, 대답 대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피투성이 뺨 위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이르면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책의 내용이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거름으로 쓸 똥을 모으라는 명령을 거부하다 처형당한 한 청년의 이야기는 눈물 나는 유머다. '아무리 찾아도 똥을 못 찾았다'는 그에게 간수가 물었다. "길가라도 뒤져봐야 할 거 아냐?" 대답이 걸작이다. "트럭도 똥을 누는 줄은 몰랐는데요. 사회주의 트럭이 자본주의 트럭에 비해 훨씬 뛰어난 게 틀림없군요." 아무리 짓밟아도 끝내 무너뜨릴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티베트는 자주 이상향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오늘의 티베트는 눈물의 땅이다. 옮긴 이의 말을 반복하고 싶다. 뵈 랑첸(자유 티베트)!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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