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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와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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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와 '위대한 유산'

입력
200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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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는 연기하지 않는 것이 더 어울리는 배우다. 배두나가 연기를 하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 배두나의 매력은 굳이 연기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기운을 쏟아 관객에게 다가간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순간에 있다.예를 들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 엉터리 운동권 여대생 역이 배두나의 그런 매력을 보여주는 데 딱 어울렸다.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나온 ‘튜브’도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불운한 흥행 실패작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남편을 찾아 밤거리 유흥가를 헤매는 모습이 배두나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서 배두나는 연기하는 배우와 연기하지 않는 배우의 이미지를 오락가락하는 듯 보인다. 도무지 인생의 전망이라곤 없어 보이는 이십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 여성을 연기하는 그에게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갈피를 통해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운운하는 편지가 배달된다.

하이틴 로맨스 같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용이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깨끗하고 맑은 무공해 음식 같은 매력이 있다.

여기서 배두나는 멜로드라마의 닭살 돋는 대사를 하며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 듯 보이고 그런 심정을 아는 듯 영화의 템포는 휙휙 지나간다. 그러고 나면 무장해제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도발적인 면모를 숨긴 배우 배두나의 매력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기다린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가 배두나의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영화라면 ‘위대한 유산’은 김선아가 본격적으로 영화배우 선언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임창정과 짝을 이루어 하릴 없는 백수들의 연애담 주인공을 연기하는 김선아는 예쁘게 보이는 것을 포기한 채 온 몸을 다해 망가지면서 놀랍게도 가학적인 웃음이 아닌, 이 비루한 일상을 비비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연약한 표정을 들춰내는 공감의 매력을 끌어낸다.

이 영화에서 그렇고 그런 넌센스 코미디를 예상했던 관객은 따라서 배우들의 출중한 기량에 슬쩍 놀라게 된다. 통속물의 노골적인 재미를 만끽하게 하면서도 공감할 만한 감정이입의 깊이를 확보해 내는 것이다.

홍기선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배우 김중기의 두 번째 주연작인 ‘선택’은 유명한 장기수 김선명의 실제 삶을 토대로 한 영화다. 어느 편이냐를 떠나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냥 눈물이 난다.

소박하게 만들어진 우화 같은 만듦새를 지녔는데도 보고 있으면 심정이 울컥해진다. 한 뼘의 감옥 마루바닥에서나 자유를 구할 수 없었던 한 사상범의 내면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한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선택’은 굳이 그의 내면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겸손하게 그의 모습을 훑으면서 무정하게 살았던 우리의 현실, 지금도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되고 있는 대립과 증오의 역사 속에서 자기 마음을 지키며 살았던 인간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휴, 이런 영화들에 숨이 가쁘다면 언제 어디서 봐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는 성룡의 신작 ‘메달리온’이 기다리고 있다. 와이어와 특수효과에 의존한 성룡의 액션이라면 화를 낼 팬들도 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스크린에서 만년 청년처럼 뛰고 구르는 성룡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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