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인력 부족, 학부생들의 학력 저하, 이공계 기피현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대 이공대 교수들이 "대학원 정원도 임기 중 단계적으로 대폭 축소하겠다"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공식 발언을 계기로 집단 반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학문의 특성과 열악한 지원 탓에 상당수 대학원생을 각종 연구와 실험 실무자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일부 이공계 교수들은 "대학원 정원 축소는 이공계 위기만을 가중시킬 위험한 처사"라며 정 총장의 해명을 요구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의 K교수는 "대학원 정원 축소는 이공계 교수들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며 "총장이 이공계 위기를 오히려 부추기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서울대 출신 학부 졸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화학부의 S교수는 "대학원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원 축소의 뜻은 이해하나 우리에겐 '실험실 문을 닫으라'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푸념했다. 최근 2년간 대학원생 모집이 연속 미달됐던 자연대는 이미 미달 인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정원을 줄이는 바람에 한바탕 진통을 겪은 상태. 이종섭 자연대 교무부학장은 "현재 대학원생이 없어 연구가 불가능한 곳이 상당수인 것으로 안다"며 "더 이상의 정원 축소는 절대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공계 교수들은 현재 서울대가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의 성장을 위한 계획 실천보다 발등에 떨어진 위기부터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사후과정생(포스트닥터), 테크니션 등 연구 전문 인력에 대한 지원도 전혀 없이 대학원생 교육의 질을 미국 수준으로 향상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설명이다. 농생대의 L교수는 "투자가 적다고 사람을 줄여 세계수준에 도달하겠다는 논리는 한국의 성장이 0%일 때나 가능한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종 공대 교무부학장은 "최악의 취업난 덕에 그나마 대학원 지원자가 정원을 넘겼다"며 "대학원의 사회적 완충 역할 기능을 생각할 때 정원은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공계 교수들의 반발에 대해 백충현 대학원장은 "정원 축소 문제는 학교 자율로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단과대학은 물론, 전공에 따라 정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비 대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따른 위기감을 반영하듯 이공계 교수들은 개교 사상 처음으로 다음달 초 수험생 학부모와 학생들을 상대로 한 입학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 농생대측은 다음달 8일께 교내에서 합동 설명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라고 23일 밝혔다. 공대와 자연대는 각각 홍보 책자와 CD를 제작해 전국 일선 고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공대 원자핵공학과의 김창효 교수는 "이공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수험생들에게 입학 정보를 적극 홍보하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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