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재신임 정국의 책임이 노무현 대통령과 (대통령의) 측근, 정부에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요구한 지 불과 하루 만에 국정혼란의 책임을 야당과 일부 언론에 돌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 총리의 답변은 "오늘의 불안한 사태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노 대통령과 집권세력인가, 아니면 국회·야당·언론인가"라는 한나라당 의원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동안의 처신과, 특히 국회 답변태도를 감안하면 곱씹을 대목임에 틀림없다.재신임 정국의 원인에 대한 처방이 대통령과 총리가 다르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고 총리는 대통령중심제가 정상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통상적 총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재신임을 요구함으로써 국정운영의 무게가 총리쪽에 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노 대통령 자신도 재신임을 요구한 뒤 내각이 총리를 중심으로 국정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고 총리는 또 "정치권에서 내각의 조기개편이 필요하다고 하면, 새로운 국정운영 시스템 출발을 위해 (대통령에게) 이를 건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고, 대통령의 친서가 미국에 전달됐음을 이례적으로 인정했다.
고 총리의 답변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 탓은 없고 오로지 네 탓만 있는' 혼란스러운 재신임 정국에서 그나마 소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재신임 문제에 대한 해법은 노 대통령이 귀국, 4당 대표와 연쇄 회담을 가진 뒤에야 윤곽이 잡힐 것이다. 재신임을 정치적으로 풀어 내는 것과 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이 제 할 일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여서, 고 총리에 주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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