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도의 꿈나무들은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헤라클레스 전병관(34 全炳寬)이 20년 가까운 선수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쓴 그 만의 ‘노하우’ 모음집이다.
훈련하면서, 또 경기에 나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그 때 그 때 메모했던 것을 정리한 20페이지 분량의 ‘역도 이론서’에는 세계 최고 역사(力士)의 살아 있는 지혜들이 담겨있다.
‘체중감량은 반드시 굶어서 하라’ ‘경기에 임할 때 나 자신이 아니라 가족과 스승, 학교, 지역사회, 더 나아가 국민, 국가를 생각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고 힘이 솟아난다’ ‘경기 때는 그립을 착용하지 않지만 연습 때와 똑같이 그립을 끼는 순서까지 포함해 동작을 기계적으로 해야 리듬이 유지된다’ ‘기술은 한 달 전에 연습한 것이 시합에 나타난다. 자세나 신발은 한달 안에는 고치거나 바꾸지 말라’ ‘외국에 나가 시차가 생기면 비타민과 칼슘이 빠져 나가므로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어라’ 등 사소한 듯 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얘기해도 잊기 쉬운 것까지 포함한 38개 항목을 선수들에게 달달 외우도록 권하고 있다.
전병관은 요즘 제2, 제3의 전병관 만들기에 빠져 있다. 자신들의 우상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는 행운에 힘이 난 꿈나무들은 대회마다 한국기록을 경신하며 쑥쑥 성장하고 있다. 올림픽 입상은 분명하고 메달 색깔이 문제라는 선수도 있다.
전병관이 누구인가. 전북 진안에서 중학 1학년때 역도를 시작, 1년여만에 소년체전을 제패하고 3학년때 최연소국가대표로 발탁된 후 92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91세계선수권 금메달, 90·94아시안게임 연패, 92아시아선수권 금메달로 소위 4대 대회를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룬 한국 역도의 영웅이 아닌가.
98년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감한 전병관은 2001년 5월 여자 상비군 코치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행정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30대 초반의 그를 홍보이사로 발탁했던 대한역도연맹의 여무남회장이 6개월만에 후진양성의 특별임무를 맡긴 것.
그에게 배정된 선수는 2004 올림픽에 대비한 여자 꿈나무 3명이었다. 임정화 장미란 김미경.
중학 3년생이었던 임정화(현 대구서부공고 2)는 그 해 11월 중학선수권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우더니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출전한 2002 전국체전서 한국신기록 4개를 기록하며 3관왕이 되고, 지난 12일의 체전에서도 58㎏급 3관왕과 4개의 한국신(인상 2, 용상 합계 각1)을 재현해 '여자 전병관'으로 불리게 됐다. 혼자 세운 한국신기록이 벌써 19개이다.
임정화는 지난해 2월 14세 2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내년 올림픽의 메달획득도 전망이 밝다. 현재기록이 인상 95㎏ 용상 118㎏으로 2000시드니올림픽 최고기록(95㎏ ,127.5㎏)에 근접해 있다.
1년 사이 인상 2.5㎏ 용상 5㎏ 증가 한 것으로 보아 현 추세면 메달이 가능하고 27세가 전성기임을 감안하면 2008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63㎏급 김미경(한체대)도 이번 체전서 인상(96㎏) 용상 (123㎏) 신기록, 합계 타이기록(217.5㎏)을 작성했으며, 장미란(원주시청)은 최중량급인 75㎏이상급에서 인상(120㎏) 용상(156㎏) 합계(275㎏) 모두 자신의 종전 한국기록을 경신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전병관은 이들 3명을 상비군에서 졸업시켜 국가대표팀으로 올리고 이제 남자를 포함한 새로운 꿈나무 11명을 받아 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그는 젊은 지도자답게 선수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함께 하며 대화로 고민을 나누는 신세대 인기 코치이다.
그러면서도 공부하는 지도자이다. '과학적인 것이 이긴다'는 소신아래 선수시절부터 항상 연구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최근까지 대학에 강의도 나갔다.
대표적인 연구의 산물은 역도화. '역도는 중심운동이기 때문에 신발이 중요하다'며 선수시절부터 스스로 역도화를 만들어 신었고 상비군 선수들에게도 이를 제공, 기록경신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청계천에서 컴퓨터로 굽을 깎아다 만든 신발은 양쪽의 높이 차가 0.1㎜ 이하여서 양발에 힘이 고르게 분포되며 선수별 체형과 자세에 따라서 가장 힘을 잘 모을 수 있는 높이로 굽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자신은 신형 역도화 때문에 96올림픽에서 낭패를 보기도 했다. 적응에 두달 이상 소요되는데 대회 20일전 새로운 신발을 신었고 결국 바벨을 들 때 갑자기 힘이 빠지는 바람에 실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상비군 선수들에게 봉 잡는 방법, 다리의 폭 등 스타트의 자세부터 간과하기 쉬운 기술을 가르쳐 효과를 보았다. 봉 잡을 때는 바로 잡는 것과 손에 자극을 준 후 잡는 것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그는 또 선수들에게 틈틈이 본인의 자세를 그림으로 그리며 연구하게 한다. 잘 하는 선수의 허리와 무릎 각도를 자신의 것과 비교하다 보면 좋은 자세가 나온다는 것.
우리나라 선수들은 허리가 길어 다치기 쉽기 때문에 허리를 세우고 하체로 끌어서 가볍다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반복훈련을 중요시 한다. "메달 결정을 앞두고 많은 관중 앞에서 혼자 남았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안 납니다. 심리적 압박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죠. 이때는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해야 합니다. 횟가루를 묻히고, 앉고, 봉을 잡고, 엉덩이를 올린 후 바닥을 보고, 시선의 각도를 잡은 후 다 되면 힘을 쓰는 겁니다. 이 순서를 외우면서 하면 긴장이 덜 되죠. 그러기 위해선 기계와 같이 반복하는 훈련이 최고입니다."
이는 중학교 시절 역도에 입문할 때 정인영 선생으로부터 배운 기초이기도 하다.
/사진=손용석기자
유석근 편집위원
■영원한 스승 故정인영 교사
전병관이 모델로 삼는 지도자는 자신을 역도의 길로 인도한 고 정인영 교사이다. 정교사는 77년 전북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후 위도중에서 수영부를 육성했고 82년 진안 마령중에 부임해서는 역도부를 창설한 후 전병관을 발굴해 소년체전에서 우승시켰다. 이어 96년 순창여중으로 옮겨서도 역도부를 만들어 숱한 국가대표를 배출하며 순창을 여자역도의 메카로 성장시켰으며, 2001년 8월 방학중에 선수들을 지도하다 뇌출혈을 일으켜 48세로 순직했다. 그는 역도에 문외한이었지만 마령중에서 체력검사를 통해 근력과 순발력이 좋은 학생들을 선발한 후 전문서적들을 탐독하면서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우선 6개월은 단거리와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한 산비탈 달리기, 돌 들고 제자리 뛰기 등 강한 체력훈련을 위주로 했다. 그리고 봉만 갖고 6개월간 자세연습을 실시하고 몇 개월 후 '작은 거인' 전병관을 세상에 내보였다. 전병관은 그 때의 탄탄한 기본 훈련이 선수로서 큰 고비없이 장수할 수 있게 한 바탕이었다고 분석한다. 또 경기인 출신이면 본인의 경험을 강요하는데 반해 정교사는 고정관념 없이 책의 이론대로 정석을 가르쳤다고.
정교사는 전주농고로 옮겨서도 롤러스케이트 팀을 만들어 전북의 전국체전 롤러스케이트 8연패에 시동을 걸었다. 순창여중 여자 역도부를 창설하고는 불과 1년 만에 전국 최강의 여자 역사들을 길러냈다. 서여순 이현정 손지영등 전 국가대표들이 주인공. 체육관은 커녕 기구조차 빌려 맨땅에서 훈련하는 악조건에서 이룬 기적이었다. 이들은 순창고에 올라가 전국체전을 휩쓸었으며 2000년 체전에서는 여고부에 순창고 선수 5명이 출전, 4명이 3관왕을 차지하고 금메달 14개를 획득, 체전사상 처음으로 단체가 MVP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약력
1969년 전북 진안생
83년 소년체전 금
84년 역도 최연소 국가대표
88년 고려대 입학
88년 서울올림픽 은
89년 세계주니어선수권 금
91년 세계선수권대회 금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
92·94년 아시안게임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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