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상징물은 많다. 제1상징은 자유 평등 박애를 표상하는 삼색기, 제2상징은 닭이다. 제3상징은 마리안이라는 여성, 제4상징은 백합이다. 마리안은 1789년 프랑스혁명 후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자유의 표상이다. 여성이 자유의 표상이 된 이유는 혁명으로 쟁취한 '공화국(Republique)'이라는 명사가 여성명사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들라크루아의 1830년 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는 젖가슴을 드러낸 채 삼색기를 든 여인이 등장한다. 그 여인이 마리안이다. 마리안은 100프랑 지폐와 우표 동전에도 들어 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나온 뒤 1848년부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상에 마리안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도시마다 마리안상이 세워졌다. 1886년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도 마리안의 분신이다. 최근까지 마리안으로 선정된 여성은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가수 미레유 마티외, 배우 카트린 드뇌브, 모델 래티시아 카스타등 대중 스타들이다. 마리안이 국민의 사랑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래티시아 카스타는 세금을 피하려고 런던에 호화아파트를 샀다가 비난을 받았고, 브리지트 바르도는 문화의 개방성을 외면한 극우주의적 행동으로 반감을 샀다.
■ 최근 시장 400명으로 구성된 마리안위원회가 새로운 마리안으로 선정한 여성은 그동안의 마리안들과 전혀 다르다. 배우 소피 마르소, 가수 카를라 브뤼니 같은 스타들을 제친 TV토크쇼 사회자 에블린 토마는 미모의 여성이 아니다. 선정사유는 공화국정신에 부합하는 자질, 역동성, 좋은 인상 등이었다. 일부에서는 평범한 얼굴을 선정함으로써 마리안의 신비스러운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불평하지만, 프랑스는 미모 대신 품성을 택했다. 에블린 토마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의 이름 '나의 선택'을 빗대어 말하면 이것은 새로운 '프랑스의 선택'이다.
■ 프랑스의 네 가지 상징을 우리의 경우에 대입하면 제1상징은 당연히 태극기이며 제2상징은 호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제4상징은 무궁화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제3상징 마리안은 누구인가? 우리는 여성을 천시해왔고 자유라는 이념을 여성성으로 파악해 국가상징을 만들어낸 전통도 없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의 마리안을 꼽는다면 유관순인가, 성춘향인가, 심청인가. '상징공화국' 프랑스의 마리안을 보면서 상징과 상상력이 빈약한 민족은 오늘날과 같은 가치창조의 시대에는 더욱 힘을 내기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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