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문서에 의한 다자간 안전보장 제공' 방안을 처음으로 직접 천명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물론 이전에도 미 국무부 등으로부터 유사한 아이디어가 여러 차례 공개되기는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 같은 방안을 국제적으로 공식화하는 자리로 한미 정상회담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배려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번 회담을 앞두고 이라크 추가 파병을 원칙적으로 결정, 한미동맹 강화의 분위기를 잡았고 미측이 이에 북한 안전보장 문제로 화답했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회담의 균형을 잡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이 방안은 북핵 6자 회담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회담에서 노 대통령에게 설명한 문서 보장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논란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의 설명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반응을 처음엔 "듣기만 했을 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나중에 "수긍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수정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여전히 북미 양자간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하는 북한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북(對北) 안전보장 문서의 구체적 문안에 대해서는 앞으로 한미간에도 협의할 부분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 정상이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 양측이'차기 6자 회담에서의 진전을 모색하기 위한 수단과 방안을 연구하기로'합의한 것도 향후 문안 협의과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서도 앞으로 한미 협상을 통해 파병의 성격 및 형태, 규모와 시기 등을 결정하는 문제가 쉽지 않을 것임이 드러났다. 우리측이 공동 언론발표문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내에서 사용했던 '독자적 결정'이라는 표현을 뺀 것도 미측의 구체적 요구에 부응하는데 따른 정부의 고민이 크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라종일 보좌관은 이에 대해 "독자적이라고 하면 너무 표현이 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함으로써 미측의 요구 수위를 중요하게 고려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동맹 재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해 한반도 안보상황을 신중히 고려키로 합의했으나 이는 5월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동일한 수준이다. 주한미군 감축 문제에 대해서도 부시 대통령은 그런 결정을 한 바 없다고 말했으나 "하급 관리들이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말해 완전히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방콕=고태성기자 tsgo@hk.co.kr
■ 韓美 공동발표문 (요약)
1. 두 정상은 북핵 문제, 이라크 재건 문제, 한미동맹 발전방향 등 양국간 제반 현안에 관해 폭 넓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2.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의 조속한 평화정착과 전후 재건을 지원하기 위하여 추가파병을 결정했고 파병부대의 규모와 성격 및 형태와 시기 등에 대해서는 국내 여론, 현지 조사결과, 우리 군의 특성 등을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3.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북한이 핵폐기에 진전을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다자틀 내에서 어떻게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을지 설명했다.
4. 두 정상은 미군 재배치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신중히 고려하여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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