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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평 스포츠 포커스]프로야구에 "저주"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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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평 스포츠 포커스]프로야구에 "저주"란 없다

입력
200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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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저주'이니 '밤비노의 저주'가 정말 있을까?미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잇달아 탈락하자 수십년 전부터 내려온 '저주'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괜한 소리로 들린다. 월드시리즈 진출에 단 1승만을 남겨놓은 운명의 6차전. 8회초 3―0으로 다 이겼다고 느끼는 순간 잡을 수 있는 파울 타구를 관중의 방해로 놓치면서 순식간에 8실점해 역전패한 컵스의 패인은 야구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수비진의 연속 실수라고 분석할 것이다. 대역전극은 관중 방해 후 일어난 투수의 폭투와 볼넷, 유격수의 에러,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 미스 등을 틈탄 플로리다의 연속 적시타가 보태져 가능했다.

보스턴의 7차전 패인도 감독의 선발투수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늑장 교체에서 비롯됐고 양키스 타선의 폭발력으로 빚어졌다. 보스턴은 지난 1929년 월드시리즈에서도 필라델피아와 4차전에서 8―0으로 낙승을 바라보다가 7회에 무려 8실점하면서 8-10으로 역전패하는 바람에 패권을 놓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대량 실점의 빌미는 타구가 햇빛에 가려지면서 내준 '햇빛안타' 두개에서 비롯됐다.

컵스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나 레드삭스의 그래디 리틀 감독은 명장이라 불리우는 뛰어난 지도자이지만 시리즈십 7차전을 현대의 김재박 감독이나 SK의 조범현 감독이 대신 이끌었으면 훨씬 나은 게임 운영을 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선발투수의 투구 위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는데도 베이커와 리틀 감독은 교체 타이밍을 세 박자 정도 놓쳤으니 상대방의 공격력이 살아날 수밖에 없다.

이야기거리를 위해 만들어진 '저주'라는 표현이 미신을 배제하는 기독교와 합리주의 정신이 생활의 근간인 미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게 흥미롭다. 아마도 패자에게 관대하려고 패인을 '저주'라는 운명에 돌리고 냉정한 분석이나 평가는 최소화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신문과 방송에서 패인을 감독의 용병술에 초점을 맞춘 평가가 나오자 리틀 감독은 "우리의 최고투수를 끝까지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하고 실패한 최고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모두 나의 잘못"이라며 감독을 감싸는 모습이 그나마 보기 좋았다.

미국인들의 패자에 대한 너그러운 정서는 경기 직후에도 잘 나타났다. 컵스가 7차전에서 패한 장소는 바로 홈구장인 리글리구장이었으나 관중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숙였을 뿐 소란이나 난동은 일체 없었다.

포스트시즌 때마다 홈팀이 역전패하거나 대패하면 경기장에 물병과 쓰레기통 등 이물질을 집어던지고 불까지 지르는 게 다반사였던 우리의 경기장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저주'없는 우리의 포스트시즌에 물병 세례도 없었으면 좋겠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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