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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물 먹고 "날씬"… "믿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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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물 먹고 "날씬"… "믿어도 되나요"

입력
2003.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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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는 데 우울증 약이 좋다면서요?"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약을 구해 먹겠어요." "병원에 가서 우울증이 아주 심각하다고, 자살할 것 같다고, 그러면 처방받을 수 있어요." "그것보다 더 좋은 것도 있대요. 간질약인데, 정말 살이 좍 빠진대요…." 살 빼는 비약(秘藥)에 대한 관심이 불로초를 찾는 진시황의 집착을 뛰어넘고 있다. "○○주세요"라고 아예 약 이름을 꼬집어 요구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다른 용도의 정신과 약물에 대한 비만치료 효과를 맹신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우울증 치료제인 푸로작(성분명 플루옥세틴), 간질 치료제인 토파맥스(성분명 토피라메이트) 등이 대표적. 비만 치료제로 승인받지도 않았고 특히 토파맥스는 비만학회가 발표한 '금지 약물'에 올랐는데도 처방은 계속되고 있다. 학회의 '금지령'과 일부 의사들의 '소신 처방'이 아이러니컬하게 병립하고 있는 것이다.부작용이 약효로

비만 치료제로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이 난 약은 제니칼(성분명 올리스타트)과 리덕틸(성분명 시부트라민) 단 두 가지.

사실 푸로작은 리덕틸처럼 식욕억제 효과가 있어 리덕틸이 시판되기 전부터 쓰여왔다. 서울아산병원 박혜순 교수팀이 12주간 88명에 대해 푸로작의 감량효과를 임상시험한 결과 5.3∼7.9%의 체중이 줄었다. 리덕틸보다 값싸고, 우울증으로 인한 비만이 있을 경우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장기 복용하면 약효가 없어져 체중이 다시 불어나는 것이 한계다.

금지 약물에 포함된 토파맥스는 일부 대학병원에서도 사용된다. 5월 핀란드에서 열린 유럽비만학회에서 약 500명에 대해 60주동안 실시된 임상결과 위약군의 경우 2.9%의 체중감소를 보인 반면 토파맥스 투여군은 9.1∼13%의 체중감량 효과를 보였다. 국내에서도 충동적으로 폭식하는 식이장애(食餌障碍)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푸로작과 약효 기능의 메커니즘이 같은 우울증 치료제인 졸로푸트(성분명 서트랄린)도 식이장애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가 간혹 이루어졌다. 다른 우울증 치료제로써 최근 금연 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부프로피온도 과체중 환자의 체중을 줄이고, 저체중 환자의 체중은 늘리는 '부작용'이 보고됐다.

비만치료의 보톡스?

정신과 약물에 관심이 쏠리는 데에는 배경이 있다. 애초에 리덕틸도 우울증 치료제로 연구되다가 체중감량이라는 부작용이 발견돼, 신약으로 탄생했다. 푸로작과 졸로푸트는 모두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라는 우울증 치료약물이다. 이들은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를 유지시켜 줌으로써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이 신경전달물질이 식욕을 억제하는 기능도 하는 것. 리덕틸은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 두 물질에 작용한다.

한 종합병원 전문의는 "비만은 우울증, 폭식경향과 연관된 경우가 많아 푸로작이나 토파맥스가 오히려 효과적인 환자가 있다"고 효용성을 주장했다. 한 가지 약으로 여러 치료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프로피온의 경우 비만치료 효과가 확인되면 담배를 끊으면서 불어나는 체중을 함께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비만 클리닉의 전문의는 "아무 약이나 걸리라는 식으로 8∼9가지 약을 섞어쓰는 것은 문제지만, 비공인 약이라도 무분별하게 쓰지만 않는다면 치료제 선택의 폭을 넓혀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승인된 약물만으로 효과가 없는 환자도 많다는 것. "보톡스나 라식 수술이 FDA 승인을 받기 수년 전부터 널리 쓰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비만치료는 장기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여전히 "승인이 나기 전까지는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쓰던 약이라도 적용 대상이 달라진다면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장기 임상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파맥스는 두통이나 손끝이 무감각해지는 등 부작용이 있는데, 이를 감수할만하냐는 질문이 나온다.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는 "원칙적으로 단기간에 살을 빼기 위해 약을 쓰는 것은 무의미하며, 장기 복용해도 안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공인된 약물만을 써야 한다"고 단언한다. 급격한 감량은 지방보다 근육과 수분을 줄여 요요현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체중은 서서히 감량해야 한다는 것이 비만치료의 원칙. 약물 역시 장기복용에 적합한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같은 우울증 치료제라도 약물마다 미묘한 효능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만 치료제도 더 시간을 두고 정밀하게 연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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