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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현대의 수행자 한국氣문화원 이명복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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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현대의 수행자 한국氣문화원 이명복 원장

입력
2003.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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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속인(俗人)들은 또 병을 앓는다. 비록 그 증세의 깊고 얕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철 바뀜에 따른 신병(身病)이라기 보다는, 낙엽 같은 삶에 문득 허망해지는 심병(心病)이다. 땀 흘리며 보낸 계절의 수확은 늘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반복될 삶은 그래서 더욱 아득하고 부질없다.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혹은 어디를 향해 이렇게 무작정 가야하는 것일까.' 이맘때면 이런 화두(話頭)에 한번쯤 깊이 침잠해보고도 싶지만 우리네 생활에 어디 그럴 여유라도 있으랴.한국기문화원장 이명복(李明馥·47)씨는 20여년간 맹렬하게 기(氣)를 공부하고 수련해온 사람이다. 철학적 공부와 수행의 깊이로 그 세계에서 첫 손가락을 꼽아준다는 '젊은' 기공사(氣功師)다. 기는 곧 만물의 근본인 도(道)의 발현이니, 그는 도를 좇는 도인(道人)이기도 한 셈이다. 그가 오랜 수련을 통해 얻고자 한 해답은 앞서의 실존적 물음에 맞닿아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과 평안 또한 그 답이다.

그러니 스산한 이 가을, 어지러운 현실을 잠시 접어두고 그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자. 혹 모를 일이다. 거기서 정말로 우리들 삶의 병을 치유하는 단초를 발견하게 될지.

처음 대면하는 이들에게 이명복씨의 평범한 외양은 뜻밖이다. 기(氣)나 도(道)를 그토록 오랫동안 연마했다고 하면 옥골선풍(玉骨仙風)을 연상하게 마련.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긴 수염에 도포 차림새 등 뭔가 생경한 풍모를 떠올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수련할 때만 편한 개량한복을 입을 뿐 일상에선 단정한 양복 차림새다. 눈빛도, 목소리도 형형하거나 위압적이기보다는 친근한 이웃처럼 마냥 부드럽고 편안하다. 이것도 긴 수련의 결과일까.

사실 그는 억센 턱선에서도 언뜻 보이듯 간단치 않은 투사(鬪士)로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일찌감치 고교 때부터 폭력교사와 불합리한 학교운영에 맞서 전교생 수업거부와 철야농성을 주도했는가 하면(살벌하던 1970년대 유신 초기였으니 고교생으로는 보통 뱃심이 아니었다), 대학(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75학번) 입학 한달여만에 수배자가 됐다. 갓 신입생이 집회와 시위 때마다 앞장서 유신 철폐를 외쳐댔으니 그 시국에서야 당연한 일. 구류에다 무기정학을 당하고선 곧바로 또 체포됐다. 전국적인 대학생 봉기를 모의했다는 '명동가톨릭학생사건' 연루혐의였다.

사건 관련자 30여명 중 유일한 '미성년자'였던 그는 결국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죄목이 적용돼 꼬박 1년을 복역했다. 제대 후 복학한 뒤에도 학생운동을 계속한 그는 그러나 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군부 집권 등으로 이어지는 암담한 정세에 끝내 절망했다. "후배, 동료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희생당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서 멀쩡히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시기였습니다. 방향 없는 분노와 폭음으로 날을 새웠지요."

무절제한 생활은 급기야 병을 낳았다. 의미를 찾지못한 삶에다 유명 종합병원들과 한의원조차 진단 못하는 무서운 허리 통증은 자살기도로까지 그를 몰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귀가 길에 응암동에서 '기공 수련장'이라는 허름한 간판이 눈에 띄었어요. 왠지 마음이 끌려 찾아들어 갔지요. 신기하게도 단 한달 만에 몸이 깨끗하게 정상으로 돌아옵디다. '아, 뭔가 기라는 게 있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수 밖에요." 82년 쯤으로 기억하는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 그게 기공과의 첫 인연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이씨는 본격적으로 기 수련에 몰두했다. 이 때부터 10여년을 그야말로 용맹정진(勇猛精進)하면서 이름난 스승들을 찾아 전국을 주유했다. 도가(道家), 불가(佛家), 요가의 수련가들에부터 전통무술 기천문(氣天門), 국선도, 심무도 등에 이르기까지 숱한 문파의 고수들과 교우하며 가르침을 얻었다. 수행에 확신을 얻은 90년대 들어서는 계획했던 박사공부마저 밀어두고 아예 기공의 본고장인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중국 도가와 무가(武家) 정통의 계승자들인 장지상(張志祥) 왕력평(王力平) 김정순(金貞順) - 일반에는 생소해도 그 분야에서는 우뢰와 같은 명성을 얻고있는 인물들이다 - 등을 수년에 걸쳐 최고과정까지 직접 사사하면서 중국정부의 공식 기공학(氣功學) 교사 자격도 따냈다.

(사실 이 과정에서는 차마 믿기 힘든 각 고수들마다의 기이한 인연과 능력 등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금강산에서 신선과 교류했다든지, 중국에 앉아 서울에 있는 사람의 오장육부를 꿰뚫어 본다든지 하는 등의. 그런 것들을 열거하면 훨씬 재미있을 것이나, 도리어 그의 진정성을 훼손할 것 같아 상술을 자제키로 했다. 일반인에게 기를 알리고자 하는 이씨의 목적은 많은 이들이 심신의 건강을 얻어 일상을 행복하게 영위토록 하겠다는 실용적 측면에 있다. 그가 경멸하는 것은 그런 신비적 측면을 과장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부류들이다)

실제로 이씨는 이 동안에도 끊임없이 자신이 터득한 바를 주위에 전해주려 애를 썼다. 단학선원의 창설에도 관여하고 기천문의 연수원장도 지냈으며, 과거 운동권과의 인연으로 청계피복노조원들과 대학 학생회 간부들을 정기적으로 지도하고 노동건강연구소를 맡아 운영하기도 했다. 생계를 외면할 수 없어 몇 년간 강사로 몸을 담았던 서울의 유명 대학입시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기공 특별교육을 실시, 뚜렷한 학습능력 향상 효과를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얘기를 끊고 이쯤에서 그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 그런데 도대체 기란 게 뭐냐. 최근 너무 남용되는 신비주의적 개념 아닌가.

"한마디로 실재하는 에너지이자, 만물을 구성하는 본질이다. 형이상학적으로는 만물의 생성변화를 주재하는 실체이다. 당신이 있는 공간 어디든 가득 차 있으며 당신의 생명활동이 가능한 것 또한 기로 인한 것이다."

― 그렇다면 기공은 또 뭔가.

"기 공부다.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전통의 심신수련법 - 명상이나 기체조 등과 같은 - 을 통해 우리 몸의 바이오 에너지를 강화시키는 트레이닝이다. (동양학의 학습법이 대체로 그렇듯) 기의 운용을 직접 체험해보고 체득하는 것이다. 종교적, 신비주의적 체험과는 전혀 다른 실용적이고 실증적인 공부다."

― 우리들은 거대담론보다는 당장의 효과에 관심을 갖는다. 기공을 하면 뭐가 좋은가.

"고도의 수련을 않더라도 하루 10∼20분 쉽고 간단한 기공만 해도 곧 심신에 뚜렷한 변화를 느끼게 된다. 생체 에너지가 충만해져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고요한 평정을 얻는다. 삶의 의미도 보다 분명해진다. 단 얼마간이라도 좋으니 당신도 직접 해보라. 스스로 느끼는 것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 좋다. 일반인은 그렇다 치고 당신이 기에 그렇게 매달리는 이유는 뭔가.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의 실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다. 기 공부는 모든 학문과 사상을 아우르는 궁극의 공부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등 인생의 고(苦)를 푸는. (그는 한때 독실한 기독교도로 교리 강의까지 했고, 불문에도 들었다. 팔뚝에는 연비를 뜬 자국이 남아있다) 더구나 기는 단순한 건강법 차원을 넘는 미래사회의 대안이다. 서구에서도 명상 붐이 일고, 이미 숱한 자연과학자들이 대체 에너지로서 기를 연구하고 있지 않느냐."

현재 서울 충무로에서 '한국기문화원'이라는 작은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기업 연수나 문화센터 등의 지도요청에 응하는 외에 언론에 숱한 기고와 칼럼을 통해서도 올바른 기공을 보급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쉬운 생활기공 입문서에서부터 본격적인 기 이론서까지 여러 권 책도 펴냈다. 특히 동양사상과 현대 물리학을 종횡으로 넘나드는 난해한 이론서는 그가 단순히 기능만을 연마한 '기술자'가 아니라 만만치 않은 학문적 소양까지 겸비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기로써 세상을 이해한다는 그에게 작금의 나라형편은 어떻게 보일까.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지막 질문을 던졌더니 곧바로 그다운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가 내면적 갈등과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그대로 표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부터 그렇습니다. 하루에 단 몇분 만이라도 고요히 명상하며 수신(修身)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반대자나 비판자가 오히려 도와주는 사람이며, 지금의 크고 작은 혼란조차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진통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치국(治國)은 그런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와의 긴 대화를 마치고 선뜻 되돌아본 현실은 왠지 더 을씨년스럽고 남루해 보였다. 그가 오랜 세월 각고로 연마한 기의 세계는 애당초 얼마간의 인터뷰로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내내 강조한 수련의 효과만큼은 못내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건강하고 조화로운 심신을 통한 평화로운 삶….' 어차피 어지러운 세상 속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 속인에게 이보다 더한 바람이 어디 있으랴. 일주일에 단 한시간이라도 시간을 내보겠노라고 선뜻 약속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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