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바깥에서 논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차라리 미대 교수들이나 대법원에 가서 로비를 하라."서울대 정운찬 총장의 말씀이다. 1998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탈락한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교수가 지난 9월 29일부터 서울대 본부 앞에서 복직투쟁을 위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나온 이야기다.
정 총장의 고충을 이해한다. 국립대 교수의 자율성이 워낙 잘 보장돼 있다 보니 한 학과나 단과대학 내 교수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에 총장이 개입하여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정 총장이 좀더 넓고 크게 생각해줄 것을 요청 드리고 싶다. 어차피 서울대 총장이란 자리는 본인이 원하건 원치 않건 일개 국립대 총장의 자리를 넘어서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서울대 입시정책과 관련해 서울대 총장이 발언을 하면 신문의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할 정도로 세인의 관심도 집중돼 있는 그런 자리다.
정 총장이 그런 높은 위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서울대에 국한된 실무적이고 최소주의적 언행을 보여왔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 총장은 그렇게 하진 않았다. 늘 언론매체의 각광을 받으면서 한국 교육 전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왔다. 최근 어느 조사에서 정 총장이 교육 분야 '최고의 리더'로 뽑힌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정 총장은 김 교수와 관련된 문제를 서울대 문제로만 보지 말고 한국 대학의 문제로 보면서 해결책을 강구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그건 교육인적자원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피해선 안 된다. 교육인적자원부를 설득하는 일도 정 총장의 몫이다.
가칭 '대학분쟁조정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만드는 건 어떨까? 교수 채용 및 재임용 갈등이 매년 전국적으로 수백 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그런 기구의 설립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자꾸 위원회를 만드는 것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므로 인권위원회의 내부 기구로 두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김 교수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이런 종류의 갈등은 사실상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은 대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대학 당국은 그건 법원이 할 일이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학 스스로 자신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모독하는 발상이다. 대학분쟁조정위원회는 국가 기구의 형식으로 존재할 망정 교수가 중심이 된 사실상의 대학 자율기구다. 대학은 정녕 대학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을 다 법원으로 가져가기를 원하는 것인가?
대학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김 교수를 포함하여 지금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많은 교수들에게 그때까지 계속 기다리라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학생들의 얼굴 보기도 낯 뜨거운 일이다. 일종의 과도기적 처방으로 대학본부 소속 교수제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갈등을 빚고 있는 단과대 또는 학과내 다른 교수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총장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현 상황에서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게끔 정 총장이 앞장서달라는 것이다. 부디 정 총장이 명실상부한 '최고의 리더'가 돼 주기를 기대한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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