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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 의학전문기자의 여자는 왜?]<24> 알코올중독에 쉽게 빠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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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 의학전문기자의 여자는 왜?]<24> 알코올중독에 쉽게 빠지는가

입력
2003.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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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붉은 반점, 점점 붉어지는 손바닥, 지방간, 거친 행동 같은 알코올 중독 증세는 술에 절어 사는 남성들에게만 나타내는 증상일까. 알코올 중독자의 절대 다수는 물론 남성이지만, 최근 중독 전문 정신과 의사들은 여성의 알코올 중독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술을 조절하지 못하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들의 알코올 중독 증세는 남성보다 진행속도가 너무 빠르다.여성들의 알코올 중독 증가는 세계적 추세이다. 연세대의대 정신과 남궁 기 교수(영동세브란스 신경정신과 과장)는 "특히 젊은 여성에서의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여성음주는 1990년대 이후 극단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안 마시는 사람들은 계속 안마시고, 마시는 사람들은 더 많이 마신다는 것이다.

알코올 의존 남자가 훨씬 높아

한번 술 마실 때 남자는 5잔 이상, 여자는 4잔 이상 마시는 경우를 과음(heavy drinking)으로 분류하는데, 여성 과음 비율이 74년 4.4%에서 82년 11.5%로 증가했다는 것. 보통 술 한잔에는 약 10g의 알코올이 함유돼있다. 술 종류에 따라 잔의 크기는 다르지만, 한 잔에 들어간 알코올량은 엇비슷하다는 것. 4잔이상이라고 하면 소주 반병을 앉은 자리에서 비운다는 뜻이다.

물론 알코올중독 유병률에서는 여전히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높다. 미국국립정신보건원이 조사한 알코올 의존 평생유병률에서 미국은 남자 16.1% 여자 3.0%, 한국은 남자 20.4% 여자 1.0%로 나타났다. 연세대의대 정신과 남궁 기 교수가 강화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남자 18.9% 여자 1.2%로 남자들이 술에 더 탐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알코올 남용 속도 여성이 빨라

외국 보고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폭음을 처음 경험하는 연령은 남자는 17.4세 여자는 18.8세. (우리나라는 남녀 다 18∼19세). 중독의 전 단계로 알코올 남용 증세가 나타나는 시기는 남자 25.6세 여자 29.0세이다. 그러나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할 정도로 악화되는 시기는 남자는 35.6세, 여자는 33.1세로 남자는 병적으로 술을 마신 지 10년 정도 지나야 정신과 병원을 찾아야 할 상황에 이르지만 여자는 4년정도만 지나면 중독에 이른다.

몸 해치는 정도는 더 심해

여성음주자의 술 마시는 양은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술로 인한 정신적 사회적 심리적 손상 정도는 오히려 더 심하다. 알코올 중독 입원 환자들은 대상으로 평소 하루 음주량을 조사한 결과, 남자는 소주 2병 반인데 비해 여자는 1병 반이었다. 술마시는 양이 알코올 중독의 진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증거다.

여성, 왜 폭음을 하나

여성음주자들은 대개 남편을 통해 술을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남궁교수는 "보통 남성음주자들의 아내들은 대개 술을 싫어한다. 보통 술마시는 남편들은 혼자 마시기 미안하고 '또 웬수 같은 술이냐'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한잔 먹어보라'고 권한는 경우가 많다. 여성음주자 남편 가운데 알코올 중독자들이 흔한 것도 이때문이다.

여성음주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사별 경제적곤란 시부모와의 불화 같은 사건을 계기로 폭음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술을 부른다

여성음주자들은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여성들이 우울증 상태에서 술을 찾는 반면 남성들은 술을 마시다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통 여성알코올 중독자들은 우울증(전체 중 48.5%)이나 불안증(60.7%)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성음주자들은 술 문제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갖는 비율도 남성보다 많다. 남성은 대신 폭력, 범죄 같은 반사회적 경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중독 전문의들이 여성음주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여성음주자들은 비음주자에 비해 자살시도가 4배나 많다는 점이다. 20대 젊은 여성과 40대 중년 여성을 특히 위험군이다.

여성들이 술에 약한 이유

여성들은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많이 증가한다. 남궁 교수는 "체지방 비율이 높고 수분 비율이 낮기 때문"이라면서 "알코올 분해 효소(ADH)도 남성에 비해 적게 분비된다"고 말했다. 술에 잘 취할 뿐 아니라 남성들에 비해 지방간 고혈압 빈혈 위장관 출혈 위궤양 간경화 등 부작용에도 더 일찍 노출된다.

월경도 술 마시는 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똑 같은 양을 마셨는데, 이번엔 필름이 끊겼다'고 의아스럽게 여기지 말라. 월경주기에 따라 여성의 호르몬 분비량이 달라지면서 똑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술로 인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주량은 예측하기도 힘들고 조절하기도 힘들다. '나의 주량은 몇병'이라는 말을 여성은 삼가는 게 현명하다.

알코올에 예민한 여성의 뇌

여성의 뇌는 알코올에 더 예민하다. 몸만 남성보다 빨리 망가지는 게 아니라 알코올성 치매 같은 손상도 더 빨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남궁 교수는 "여성에게는 뇌손상 유발물질(spermidine)이 더 많이 존재해 남성보다 더 과도하게 흥분 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호르몬 분비도 더 많아 장기적으로 뇌의 손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술먹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

술을 권하는 문화이면서도 여성음주자에게 관대한 사회는 아니다. 남궁 교수는 "술먹는 여자는 성적으로 헤프다는 등 사회적 편견에 시달린다"면서 "공개적으로 술을 마시기보다 부엌 등에서 숨어 혼자 술을 마시는 여성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성 알코올중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알코올중독 때문에 건강하지 않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여성이 낳는 아기의 35%가 태아 이상이라는 것. 여성알코올 중독자의 3분의 1은 임신 6주가 지날 때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다, 임신 사실을 알고서도 21%의 산모는 계속 술을 마신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태아알코올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위 사진)의 증상을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 안돼 통계조차 없지만 미국에서는 정신지체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태아알코올증후군인 아기는 얼굴 모양도 기형적이고, 간질, 저체중, 심장기형 등 여러가지 신체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또 기억력 언어 이해력 등 학습장애가 많고, 과잉행동, 집중력 저하, 충동이나 불안 장애 등도 나타낼 수 있다.

남궁 교수는 "알코올 관련 신경계 발달장애는 임신 첫 3개월동안 단 한번의 음주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다"면서 "평소 알코올중독 환자가 아니더라도 임신초기에는 술을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임신은 여성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의 음주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건강한 아기를 갖고 싶은 욕구가 치료 동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yjsong@hk.co.kr

■신체적·정신적 질환 동반여부 치료 첫단계

여성의 알코올 중독의 치료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알코올 중독이외의 어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질환이 동반돼 있는지를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간경화나 우울증, 불안증, 폭식증 등의 질환이 동반되는 수가 흔하기 때문이다.

또 여성의 경우는 남성 환자에 비해 자신의 알코올 문제에 대한 수치심, 죄책감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아져 있기 때문에 이를 치료 과정에서 잘 다루어 주어야 한다. 특히 어릴 적의 신체적 혹은 성적인 학대가 있었는지를 확인하여 이를 조심스럽게 다뤄주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 알코올 중독의 치료 시에는 가족 치료가 중요하다. 흔히 남편도 알코올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 치료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또 가족 치료 시에는 여성 음주자가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가정 내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전통적인 여성 역할만을 강조할 경우, 오히려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환자를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심리적 치료 이외에도 최근 들어 개발된 날트렉손이나 아캄프로세이트 등의 항갈망제를 이용한 약물치료가 도움이 된다. 이 약물들은 술 마시고 싶은 욕망을 감소시키고, 일단 술을 마시더라도 폭음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는 항갈망제와 함께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을 함께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여성의 경우는 수면제 혹은 신경안정제를 남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약물의 복용은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 자신의 술 문제를 숨기지 말고, 빨리 주변에 알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 궁 기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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