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에서 인간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물은 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는 식량을 축내고 질병을 옮기는 백해무익한 동물로만 인식돼 왔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쥐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세계적인 과학 전문지인 네이처의 표지모델로 3차례나 등장했을 정도다.그렇다면 쥐가 생물실험에 이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대부터 의학, 생물, 화학실험 등에 동물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때 변사체의 독살여부를 알기 위해 사체를 통해 나온 음식물을 개 등에게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쥐를 실험에 본격적으로 이용한 시기는 19세기 말로 질병치료제의 위험도와 약효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다. 실험용 쥐는 이제 의학, 수의학, 약학, 농학, 생물학 등을 포함한 생명과학 전반에 필수 불가결한 연구수단이 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얼마 전 '우리의 세계를 변화시킬 10가지 발명품'을 특집으로 소개하면서 10대 발명품에 '실험용 쥐'를 포함시켰다.
왜 쥐인가?
쥐가 실험동물로 각광받는 것은 포유류 중에서 가격이 싸다는 점과 쥐의 생물학적 특징 때문이다. 즉 쥐는 월경주기가 4∼5일이고 임신기간은 3주로 짧아 번식이 쉽다. 또 분만 후 곧바로 임신할 수 있고 한번에 5∼15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계산상으로 1년 동안 쥐가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는 2만여 마리나 된다. 또 한 세대의 수명이 2∼3년이기 때문에 그만큼 연구성과를 빨리 알 수 있다.
개, 원숭이, 돼지 등도 실험동물로 사용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필요한 연구 성과를 알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뿐만 아니라 쥐는 척추동물인데다 DNA의 염기 수가 30억쌍으로 사람과 거의 유사하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질병을 쥐도 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세기 이후 쥐에 관한 꾸준한 연구로 포유류 중에선 가장 많은 정보가 축적돼 있다. 더구나 반세기 동안 유전자 관련 논문의 양이 늘어나면서 유전자 쥐를 만드는 기술도 발전했으며 현재 수천여종의 유전자들을 임의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 치료약 개발을 위해 당뇨병에 걸린 유전자 쥐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고혈압, 간염, 신장염, 치주염, 유방암 등에 걸린 유전자 쥐가 300종이 넘는다.
어떤 게 있나?
실험용 쥐는 크게 몸체가 8cm 정도인 조그만 생쥐 '마우스(mouse)'와 몸체가 20cm 정도인 '래트(rat)'로 나뉜다. 쥐의 주요 생산·소비국은 미국과 일본으로 1년에 5,000만마리가 사용된다.
실험용 쥐 가운데 '근교계'라고 불리는 쥐는 20세대 이상 반복 교배를 통해 마치 일란성 쌍생아처럼 만든 쥐이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각종 실험에서 같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실험용 쥐를 만드는 회사로는 중앙실험동물사, 대한바이오링크, 샘타코, 바이오제노믹스 등이 있다. 국내에서 연간 실험대에 오르는 실험용 쥐는 350만∼400만마리 정도로 알려져있다.
이런 실험용 쥐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실험용으로 가장 흔히 쓰이는 ICR마우스의 경우 마리당 3,000원 정도지만 유전자 조작을 한 쥐의 가격은 훨씬 비싸다. 털이 없으며 면역기능도 없어 이식 및 면역관련 실험에 이용되는 누드 쥐의 경우 마리당 4만5,000∼8만원이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 쥐의 품종과 용도에 따라 가격이 500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유전자 쥐도 나와
실험용 쥐 가운데 유전자 쥐는 쥐의 DNA를 조작해 유전자를 변형한 것. 유전자 쥐 가운데 유전자를 과발현시킨 쥐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생쥐 암놈과 수놈의 인공수정이나 교배를 통해 수정란을 만든다. 이때 현미경과 미세한 주사바늘을 이용해 수정란 속에 있는 염색체에 특정질환이 생기게 하는 DNA를 삽입한다. 이렇게 한 뒤 다시 수정란을 암놈 자궁에 착상시키고 3주가 지난 뒤 태어난 새끼들 중 실제로 그 유전자가 삽입된 질환이 생긴 쥐를 분자생물학적 방법으로 찾아내면 된다. 유전자의 기능을 없앤 쥐의 생산은 태아줄기세포를 이용해 훨씬 더 오래 걸리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유전자 쥐는 지적 재산권의 대상이 될 정도로 산업적 가치가 커서 '황금 알을 낳는 쥐'로 불린다.
1994년 미국에서는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인 특정 유전자를 없앤 쥐가 탄생하자 '암젠'이라는 유명 제약사가 이 쥐의 특허권을 2,000만달러(240억원)에 사들였다. 일본의 한 생명공학연구소는 사람의 특정 암 유전자를 지닌 유전자 쥐를 마리당 40만원에 팔고 있다. 이 쥐는 신약의 발암유해성 여부 실험기간을 5년에서 6개월로 줄여 준다.
'누드 쥐'는 면역기능이 완전히 파괴돼 인간에게 생긴 암세포를 키울 때 쓰인다. 누드 쥐에서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팀은 유전자를 조작해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더 뛰어난 쥐를 만들었다. 인간의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약물이나 치매 치료제 같은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성균관대 의대 분자세포생물학교실 이한웅 교수, 연세대 병리학과 김호근 교수>도움말=성균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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