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늘 뒤처지는 건 반주음악, 즉 오케스트라 사운드였다. 자! 그런데 오랜 세월 환대받던 기존의 오페라를 옆자리로 점잖게 밀쳐낸 현대 뮤지컬의 대표곡들을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저 지휘자는 과연 누구란 말이냐."가수 조영남(57)씨는 2월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한 젊은 지휘자를 극찬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러던 차에 이 지휘자와 조영남씨가 11월 1∼2일 LG아트센터에서 함께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만나봤다.
"나만 수지 맞았지. 예상치도 않은 굴러온 떡이야." 조씨는 인터뷰 시작부터 칭찬이다. 바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휘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잠시 공연으로 넘어갔다. "LG아트센터에서 대중가수 공연은 처음이라서 굉장히 신경 쓰여." 점잖은 공연만 하던 LG아트센터에 '딜라일라' '제비' 등 히트곡을 포함해 '고향의 푸른잔디' '잊혀진 계절' '인생은 미완성' 등 올드팝과 가요가 울려퍼질 것이니 그럴 법도 하다.
조씨는 대관 신청 후 한 번 거절당한 후에야 공연 허락을 얻었다. 그는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건데 당연히 우리가 사정을 해서 품위있게 그쪽 수준에 맞추겠다고 해야지"라며 "공연장은 LG아트센터가 이거"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난 아웃사이더야. 그리고 연습도 안 해."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연도 옷장사 맘대로가 통용이 돼야지." 조영남 식 화법에 익숙해질 무렵 지휘자가 나타났다. 그러자 조씨는 "밥 먹으러 가자"며 최근 평양 공연에서도 보여줬던 바퀴 달린 신발 '힐리스'로 거리를 쓱 미끄러져 간다.
"과찬입니다." 잘 생긴 얼굴에 말쑥한 양복을 입고 쑥스럽게 말하는 지휘자는 박상현(37)씨. 만나보니 지난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지휘자였다.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성악도였지만 5년 전 영국에서 봤던 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이 그의 진로를 바꿨다.
"음악을 보는 눈이 넓어진거죠." 국내에서 했던 '오페라의 유령'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원래 노래를 하려고 했는데 후두염으로 두 달 간 연습을 못했어요. 마침 지휘자가 시작 직전 도중 하차했고, 새 지휘자 오디션이 있길래 도전해봤습니다." 짧은 연습 기간에 정식 지휘도 못해봤지만 전곡을 외워서 지휘한 열성에 감명받은 외국의 음악감독은 박씨를 선택해 한 달 동안 트레이닝을 시켰다.
조영남씨는 "그 때 감동 먹었어"라고 거든다. 알고 보니 대학 20여 년 후배였지만 '오페라의 유령' 때까지는 서로 일면식도 없었다. 둘이 알게 된 것은 올해 초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주역들이 출연한 '뮤지컬 콘서트' 때문이었다. 조씨가 박씨의 다재다능에 놀라 글을 쓴 것도 이 콘서트를 보고서였다. "그때 오리지널 악보가 오지 않아서 밤을 새워 멜로디를 보고 편곡을 했는데 다행히도 관객이 눈치를 못챘다"는 박씨는 최근 호서대 뮤지컬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편곡 작업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둘의 궁합을 묻자 조씨는 "사귀어 보면서 코드, 아니 '개코'가 맞는지 알아보는 거 그게 숙제지"라며 또 다시 유머 섞인 말을 풀어놓는다. 그러나 그는 바로 진지하게 "박상현이 클래식하고 뮤지컬까지는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봐. 근데 또 한 가지 분야인 팝스까지 정복 가능하냐? 정복한다면 3가지를 두루 정복한 국내 최초의 지휘자지. 이번 공연은 앙드레 프레빈 같은 그런 스타일의 지휘자,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지휘자가 나오느냐의 시험대야."
그러자 박씨는 "다른 훌륭한 지휘자 분들도 다 하실 수 있는데 안 하시는거죠"라며 겸손해한다. 이번 공연은 박씨가 앞으로 이끌 '모스틀리 팝스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를 겸하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를 만든 공연기획사 CMI의 정명근(지휘자 정명훈의 형) 사장에게 조영남씨가 5분만에 설득당해 출연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준다.
"조 선생님 노래를 듣고 자랐는데 함께 무대에 서게 되니 감개무량하다"는 박씨는 오케스트라와 펼칠 자기의 음악에 대해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색채는 회전초밥 같이(마지막 인터뷰 장소가 회전초밥집이었다) 여러가지를 먹을 수 있는 것. 뷔페 식으로 오페라, 뮤지컬 다양하게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면서 진실한 감동을 전하고 싶어요."
"나 이번 공연 망하면 은퇴할 거야."(조영남) "(웃으며) 선생님은 그림만 파셔도 되잖아요."(박상현). 둘은 이번 무대에서 듀엣곡을 함께 부르는 깜짝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 (02)518―7343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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