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정치적 타결'을 언급하며 재신임 국민투표 강행 의지를 크게 후퇴시켰다. 전날 "야당이 반대하면 국민투표를 강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지목된 유인태 정무수석에 대해 엄중문책을 지시할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노 대통령이 이날 재향군인회 임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한 발언내용만을 놓고 보면 '국민투표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야3당이 국민투표에 반대하거나 유보적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투표 실시에 관한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말 바꾸기' 논란이 일자 윤태영 대변인은 노 대통령에게 직접 진의를 물어본 뒤 "야당 대표들을 만나서 시정연설 때 제시했던 일정과 방법대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설득하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비록 사후에 발언수위를 조정하기는 했으나 '정치적 타결'과 '설득'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국민투표 강행 의지는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 철회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무엇보다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 통과 이후 파병을 조기에 결정할 필요성이 생겼고 또 파병을 위해선 국회, 특히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또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을 경우 개혁·진보적 세력이 중심인 지지기반이 이탈, 재신임 여부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재신임 문제와 이라크 파병 문제를 양자택일적 사안으로 보는 것은 노 대통령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며 두 문제는 완전히 별개"라고 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재신임 정국에 따른 '국정혼란 초래' 지적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또 현실적으로 국민투표를 강행하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국정혼란만 계속될 경우 결국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공산이 크다는 점을 인식했을 수도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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