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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꽃은 감동이다- 전문가 4인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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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꽃은 감동이다- 전문가 4인의 대화

입력
2003.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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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소문이 떠돌던 순간부터 꽃은 낭만적 품성의 대변자가 됐다.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청년들이 꽃송이를 머리에 꽂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서울 청담동에선 꽃이 사랑과 낭만만 뜻하지 않는다.꽃은 이제 웰빙, 혹은 럭셔리문화의 한 코드이자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격조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꽃을 보는 안목은 필수덕목이 됐다. 스타일리시하게 포장된 꽃 한다발은 샤넬 로고가 큼직하게 찍힌 퀼팅백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품위있는 취향을 드러내준다.

특별한 날을 위한 기념품에서 일상의 즐거움으로 꽃을 향유하는 문화계층이 늘고 있다.

“청담동 한 카페에서 남자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에 양란이 띄워져있더군요. 숨이 멎는듯한 감동을 받았어요. 이런 정성은 정말 고상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거든요. 또 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기도 해요. 비오는 날 수국을 보면서 거기 얽힌 옛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꽃은 뭔가를 연상시키고 추억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죠. 일상에서 잊고 사는 소중한 것들을 연상시키는 힘이야말로 꽃의 위대함 아닐까요.”

우리시대 꽃문화를 가장 잘 안다고 자타가 공인한 4명의 꽃애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청담동 카페문화에 꽃 인테리어를 접목시킨 주역으로 불리는 사진작가 겸 ‘카페 드 플로라’의 운영자 김용호씨, 꽃집 겸 청담동 럭셔리족들의 꽃꽂이 강습으로 유명한 ‘소호&노호’의 플로리스트 이혜경씨, 영화 ‘스캔들’의 아트디렉터로서 꽃인테리어에 탁월한 조예를 보여 화제를 모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 꽃카페 알레를 운영하고있는 플로리스트 우현미씨. 그들이 꽃을 통해 본 세상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꽃은 부유층의 문화다, 혹은 아니다

정구호 청담동에 꽃문화를 탄생시킨 주역은 아무래도 카페 드 플로라인 것 같아요. 당시만해도 카페는 그저 음료만 팔면 그만이었는데 꽃과 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공간이 나와 소위 패션피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죠.

김용호 주역은 무슨…. 워낙 꽃을 좋아해서 1996년에 카페 문을 열면서 카페를 빙둘러가며 화단을 만든게 화제가 되긴 했어요. 하지만 정작 꽃을 사람들 곁으로 이끌고, 우아한 취향으로 끌어올린 데에는 이혜경씨의 소호&노호 역할이 더 커요.

이혜경 전 IMF의 역할이 더 큰 것 같은데요(웃음). 제가 소호&노호를 처음 낸 게 1997년 IMF환란위기 직전이었거든요. ‘이젠 망했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잘됐어요. 뉴욕이나 파리 등 해외에서 유학중이던 사람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뉴욕의 소호거리처럼 꽃문화가 발달하고 외국생활의 향수를 풀어줄 데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때부터 꽃의 스타일링이 중요해지기 시작했구요, 사실은 청담동문화도 이런 사람들에 의해 비로소 태동했다고 봐야지요.

김용호 그런 의미에서 청담동 꽃문화는 부자들의 문화라는 생각도 들어요. 가진 사람들이 남과 차별화하면서 자신의 취향과 수준, 감각을 표현하는 또 다른 문화코드로 꽃을 선택한 게 아닌가 싶은.

정구호 그렇다면 좀 슬픈 얘기가 되죠. 제 생각엔 꽃이 부자의 문화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워요. 생선장수라고 오페라 못보나요? 다만 부자들은 쉽게 자주 보고 서민들은 가끔 보는 차이지요. 청담동이 꽃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대중화하고 있고 무엇보다 꽃이 점차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추세라는 걸 주목해야지요.

꽃, 일상의 문화로

우현미 예전엔 100이면 100명이 다 선물용으로 꽃을 샀지만 요즘은 70 정도로 내려왔어요. 점점 자기자신을 위한 꽃이 늘어난다는 얘기죠. 그만큼 꽃문화가 친근해지고 일상화한 것 같아요.

정구호 저는 고등학교때 친구네 집에 갈때면 꼭 친구 어머니한테 꽃을 사다드렸어요. 엄청 예뻐해주셨죠. 그 이후에도 꽃은 졸업기념이나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을 위한 것이었는데 1998년도 무렵부터 ‘삶의 질’이 화두가 되면서 목적이 아닌 스스로 즐기기 위한 꽃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고보니 우리사회에서 삶의 질이 화두가 된 계기가 IMF였다는 생각도 드네요. 개인적으론 꽃보다 풀이 더 좋아요. 오래 가니까(웃음). 요즘엔 일요일이면 양재동 꽃시장에 자주 들러요. 예쁜 꽃을 보니까 즐겁고 정말 좋으면 사들고 오기도 하고.

이혜경 꽃 향유계층이 늘어난 덕분인지 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어요. 전에는 손님들이 말 그대로 지정을 해요. 그것도 거의 반말조로 ‘노랑 장미 다섯송이에 안개꽃 1,000원 어치’ 하는 식이죠. 그런데 요즘은 누구한테 줄 거다, 혹은 어떤 장소에 가져갈거다라면서 플로리스트에게 일임해요.

김용호 그건 꽃이 일종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카페를 갈 때 음식 때문에 그 카페를 선택하는 게 아니잖아요. 인테리어가 중요하지요. 요즘 청담동 일대에서 테이블에 꽃을 놓지않은 카페는 거의 보기 어려운데 이유가 뭐겠어요. 꽃 자체가 어떤 품격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거죠. 자연 꽃다발 하나를 사도 취향을 드러내는 만큼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이 안전하지요.

이혜경 한때는 꽃집하면 아가씨, 또 예쁘다는 식으로 연상됐고 그런 대중가요도 있었는데 이젠 그 가사도 바뀌어야겠네요.

김용호 예전엔 빨간 장미 몇 송이에 풍성해보이라고 안개꽃을 왕창 넣어서 만드는 꽃다발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 그런 꽃을 받으면 너무 촌스럽다고 느껴져요. 꽃도 이제 스타일링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할까.

꽃은 그 사람이다

우현미 꽃은 건축이나 인테리어, 패션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이런 분야에서 인위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스러운 것, 여러 다른 소재들이 믹스&매치되는 것 등이 트렌드로 뜨면 꽃도 거기에 발을 맞추는데 특히 요즘은 영국식 꽃꽂이가 유행이예요. 정원에서 그냥 막 잘라서 내놓은 것 같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이혜경 플로리스트 끼리 모이면 ‘요즘은 정말 꽂음직하다’는 우스개 소리를 자주해요. 꽃문화가 고급화하면서 꽃품종이나 색상이 워낙 다양해지고 고급 수입종들도 많이 들어오고 한마디로 재료가 풍부해졌어요. 영감을 얻는데 큰 힘이 되지요.

정구호 음식이나 인테리어나 패션이나 음악이나 모든 게 다 트렌드가 있잖아요. 꽃도 스타일링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소리가 대세인데 그래도 변치않는 한가지는 있는 것 같아요. 꽃은 상대에게 따뜻한 감흥을 전해준다는 거죠. 주는 사람이든 받는 사람이든.

우현미 개인적으로 저는 꽃이나 식물에 치료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청소는 잘 안해도 허브를 키워 말리거나 꽃을 보살피고 아로마테라피도 하고 그러면 하루 해가 다 가는데 그게 정신적 치유를 위한 과정이예요. 참 좋죠.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사진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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