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의 아내이자 여성 운동가인 오노 요코가 한 세대 전에 '여성은 세상의 검둥이'라고 자조했지만 이제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폄하되는 일은 드물다. 특히 2030세대에게 남녀평등은 당연한 사실로 자리잡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그런데 나의 이 같은 믿음이 흔들리는 때가 바로 운전할 때이다. 국내 운전자 2,000만 명 가운데 여성이 670만 명이고 여성전용 주차장까지 따로 마련돼 있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기가 죽는다.
며칠 전 자동차의 엔진에서 떨리는 소리가 나 정비업소를 찾아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정비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나를 위 아래로 훑어 보더니 "센서에 이상이 있다"며 드로틀바디라는 부품을 교체하면 된다고 했다. "마침 중고품이 있는데 기능에는 하자가 없으니까 그걸로 교체하는 게 어때요? 30분이면 끝납니다." 그는 제품에 하자가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시간이 급한지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비사의 장담대로 부품을 교체하는 데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부품을 교환했으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에 시동을 걸었다.
그렇지만 증상은 오히려 심해졌다.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엔진에서 폭발하는 듯한 소음이 진동해 공포감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배기관으로는 매연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자동차 정기검사가 있어 검사원에게 증상을 얘기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드로틀바디에 이물질이 많이 끼어서 그런 겁니다. 청소만 하면 말끔해집니다." 정비사의 말대로 드로틀바디를 청소했더니 언제 그랬냐 싶게 자동차가 잘 굴러간다.
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가를 알게 됐다. "정비센터에서는 여자가 봉이야. 정비소에 갈 때는 반드시 남자를 동반해야 한다."
결론은 또 남녀차별인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우리 세대에도 남녀차별의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기죽지 않고 운전하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에 대한 편의시설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이면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서 미 호 IBK 컨설팅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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