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는 지금 심각한 난국에 처해있다. 소비는 꽁꽁 얼어붙어 있고 투자도 전년 동기비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정부의 재정여력은 바닥이 난 상태여서 경기 부양책을 제대로 쓸 수도 없다. 겨우 수출부문에서 약간의 증가세를 보여 성장률 3% 수준은 힘겹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나마도 원화절상의 위험요소가 있어 경기를 받쳐줄 힘이 곧 쇠진할지 모른다.금년 상반기 동안은 세계경제 전반이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랬다지만, 3분기 들어와서 세계경제가 확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경제 상황은 아주 좋지 않다.
정부는 얼마 전 일종의 경기부양책으로써 콜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했고 내구성 소비재 부문이라도 활성화시키기 위해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특소세를 비교적 큰 폭으로 인하했다. 또 설비투자금액의 15%를 세금에서 깎아주고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누진세율 대신 18%의 단일세율을 적용해 근로소득세 부담을 덜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경기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릇, 거시정책수단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하여는 경제학에서 항상 전제로 깔고 있는 '기타여건의 불변성'(ceteris paribus)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이 경제전체의 틀 속에서 과거에 우리가 경험한대로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소비와 투자를 부추기고 생산과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주변여건에 이변이 없어야 한다.
특히 주변여건에는 심리적인 것도 포함된다. 정부가 부양책으로 이런저런 정책을 쓸 때 민간이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질 것, 그러한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될 것, 그 정책의 결과가 목표기간 내에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을 것 등등의 심리적 가정을 포함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사정은 '기타여건'이 불변인 상태가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아마도 건국 이래 처음으로 그 근본부터 요동치고 있다. 얼마 전 뉴스위크지는 한국정부가 지난 반세기 동안 가꾸어 온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기사를 실어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작금의 국내여건을 보면 그런 '오해'를 빚을 만도 하다. 줄줄이 발생하는 파업사태, 은행의 인수·합병을 결단코 반대하는 노조, 학원을 박차고 거리로 나선 교사들의 데모, 우월성 보다는 평균을 지향하는 사회분위기 등이 능력과 경쟁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국내정국은 이른바 '재신임'을 둘러싸고 혼돈을 거듭하고 이다. 외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4일 사설에서 '왜 한국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영도아래 5년을 보내야 한다는데 절망하는지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그가 북한 핵위협을 외면하고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으며 호전적 노조를 방치해 경제성장이 위험에 빠졌고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졌으며 태풍이 국토를 강타하고 있을 때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는 등 그의 재임 8개월은 불행의 연속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판국에 어떤 경제정책을 쓴다 해도 그 효과가 제대로 날 리 없다. 불안한 국민들은 합리적 소비와 투자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보다는 부동산 사재기나 금붙이 사모으기 그리고 해외이민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제외적 제반여건이 이렇듯 불안할 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동안의 잘못을 거울삼아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불확실 요인을 최대로 차단하는데 전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륜있는 경제전문가를 과감히 등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유 장 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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